[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93)] 유선 '누름돌'
누름돌
유 선
냇물에 닳고 깎여 옥수(玉手)처럼 반드럽다
김칫독에 올려놓고 지긋이 눌러주듯이
그 무게
숨을 죽여서
맛을 내게 하는 돌.
이 세상 모든 욕심, 불같이 이는 화를
일러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알아차려
지긋이
늘 눌러주는
그런 돌이 되고 싶다.
유선 시인의 2연으로 된 연시조 「누름돌」의 전문이다. 1연은 누름돌에 내재된 가치를, 2연은 그 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했다. 물론 그 소망은 누름돌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가르침을 체화(體化)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다.
아무 돌이나 누름돌로 쓸 수는 없다. 그 돌은 ‘냇물에 닳고 깎여 옥수(玉手)처럼 반드럽다’ 세상살이 어찌 번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오욕칠정에 휘둘려 모가 난 돌처럼 날이 선 심성을 흐르는 냇물은 원만하게 깎아준다. 그 인고의 세월을 다 감당한 반드러운 돌이라야 비로소 ‘그 무게’가 ‘숨을 죽여서/ 맛을 내게 하는 돌’이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누름돌이 ‘냇물에 닳고 깎여’야만 하는 이유가 2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세상 모든 욕심, 불같이 이는 화를/일러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알아차’리는 돌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지긋이/늘 눌러주는/그런 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서 밝힌 바 있지만, 유선 시인은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시다. 2연 종장의 ‘늘’이라는 한 글자가 새삼 가슴에 닿는다. ‘늘’이다. 이 한 글자에 담긴 가르침은 항상성과 일관성 그리고 끊이지 않음이다. 이광호 시인, 이경렬 시인, 김우영 시인, 최영선 시인, 이강석 시인 등이 오십여 년 전 선생님께 문학을 배운 직계 제자들이다. 시를 향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늘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소중히 남아있다.
선생님. 가르침대로 ‘맛을 내게 하는’ 누름돌 같은 시를 향해 ‘늘’ 정진하겠습니다.
유 선 시인
《시조문학》 천료로 등단
의왕중 교장으로 정년 퇴임
녹조근정훈장
제1회 수원시인상, 제1회 경기문학인상 등 수상
경기시조시인협회 고문
시조집 『세월의 江을 건너며』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