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95)] 방극률 '똘감나무'
똘감나무
방극률
똘감나무들 졸가지만 본다
어느 나뭇가지나 이파리 없는 공백의 시간이다
졸가지에 늑대 다리 모양도 보인다
승천하는 용의 굵은 몸통으로 보인
곁가지도 보면서
필묵지연(筆墨紙硯)이 마침 곁에 있어
연서를 써서 보낸다
-싱그러운 그림이 싹틀
봄의 마음을 기다려 주세요-
돌감나무일 터이다. 그런데 돌감나무가 아니고 똘감나무란다. 맞다. 굳이 특별히 낮잡아 부르려 함이 아니다. 똘감나무라고 해야 제맛이 산다. 우리말에서 ‘돌’은 열매나 나물 따위를 일컫는 이름씨 앞에 붙어 그 맛이나 생김새가 제 이름을 지닌 것만 못하거나, 굳이 키운 작물이 아니라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란 것을 일컫게 하는 접사이다, 돌감도 마찬가지이다. 산에서 자생한 감이라 하여 산감이라고도 부른다. 고욤과는 다르다. 고욤은 그 크기가 기껏해야 포도알만 한데 돌감은 제대로 된 감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제법 어린애 주먹만은 하다.
고향마을 뒷동산쯤이지 싶다. 시인은 똘감나무 아래 섰다. 돌감 열매가 다 떨어진 탓일까. 하필이면 ‘똘감나무들 졸가지만 본다' 나뭇잎마저 다 져서 앙상한 잔가지에는 ’이파리 없는 공백의 시간‘이 대신 걸려 있다. 그 잔가지들은 ’늑대 다리 모양도‘ 같고 어찌 보면 ‘승천하는 용의 굵은 몸통’도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이즈음의 절기일 것만 같다. 아직 새잎의 움은 돋지 못했어도 새봄의 기운이 우듬지 끝까지 꼼지락거리게 하는 이른 봄의 한나절이다. 지필묵을 따로 장만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가슴에서 꺼내어 쓰면 된다. ‘필묵지연(筆墨紙硯)이 마침 곁에 있어/연서를 써서 보낸다’
누구일까. 그 연서를 받을 이가. 똘감나무에 새잎이 돋고 만산에‘-싱그러운 그림이 싹틀/봄의 마음을’ 받을 이가. 부럽다. 나는 받아 줄 사람이 없다. 보내 줄 사람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기다린다. 며칠만 더 있으면 내 사무실 뒤편 팔달산에 개나리가 필 것이다. 진달래도 피고 여느 봄처럼 또 벚꽃이 흐드러질 텐데.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방 극 률 시인
한국문인협회. 수원시인협회. 남원문인협회 회원
서정문학 운영위원
시집 '잔서골 뻐꾹새는 새참을 알린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