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10년 추억의 장소 ‘다담’도 문을 닫는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문화예술인과 역사학자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다담이 3월 15일 문을 닫는다. 어느 날 다담에서 마주친 술벗들. (사진=김우영)
문화예술인과 역사학자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다담이 3월 15일 문을 닫는다. 어느 날 다담에서 마주친 술벗들. (사진=김우영)

“다담이 3월 15일로 영업 종료됨을 알립니다. 그동안 애써주시고 챙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자에 “헉!”하고 답장을 보냈다.

10년 전 '다담'이 자리 잡은 이 집은 1957년에 지어졌다. 나와 동갑내기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갔던 걸까?

문을 연 2017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에겐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수원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전시장이자, 시낭독회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작지만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갤러리이기도 해서 젊은 화가들의 개인전이나 그룹전이 끊이지 않고 열렸다. 주머니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나지만 이곳에서 소품을 구입해 딸에게 주기도 했다.

수원민예총 문학위원회 멤버들이 주축이 된 ‘시콤달콤 시 낭송회’도 한 달에 한 번씩 개최됐으며,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의 멤버들의 ‘2차’는 당연히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수원과 인근지역 역사학자들이 자주 얼굴을 내미는 장소이기도 했다. 혼자 화성이나 성안을 산책하다가 약속 없이 들러도 항상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드는 곳이 다담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항상 열띤 토론을 이어갔고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더 깊은 속정을 쌓았다. 화성연구회의 학술발표회나 강좌 등 사업과 답사여행 계획은 여기서 이루어진다는 우스갯말도 나왔다.

내 환갑 때도 절친한 벗들이 여기서 조촐하지만 인상 깊은 잔치를 열어줬다.

얼마 전 대보름날에도 이곳에서 몇몇이 모였다. 절기만 되면 ‘캣피플’이 되는 한 친구의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타령에 화답한 비슷한 연배의 술꾼들이 보름달처럼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저녁 무렵 구름이 잔뜩 끼어서 달맞이를 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어느 순간 구름은 모두 물러가고 크고 환한 달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월식(月蝕)도 진행돼 볼거리를 더했다.

붉은 달(레드문)이 떠오르는 개기월식이었다. 정월대보름과 개기월식이 겹친 것은 1990년 2월 이후 36년 만이란다.

취한 내가 먼저 자리를 뜰 때까지 이야기는 쉴 사이 없이 계속됐다.

예전의 나는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아니면 ‘음주 총량법칙’이 작용했는지, 뒤늦게 철이 든 것인지는 몰라도 환갑이 지난 후부터는 술이 많이 취한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가고 있다. (물론 1/N 술값은 놓고 나온다)

다담 외관. (사진=김우영)
다담 외관. (사진=김우영)

이날은 최근 형제를 잃은 벗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를 참으로 아끼고, 그 역시 많이 자랑스러워하던 형제가 임종하던 순간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우리의 마지막도 생각했다.

사실, 비슷한 또래인 우리들의 남은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에 비하면... 100살까지 산다고 해봤자 30년 정도다. 그나마 나의 의지대로 살면서, 자식이나 형제, 이웃에게 손 벌리지 않으면서 내 밥벌이나마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담이 문 닫으면 어디서 이 사람들과 만나야 할까? 여기서 만든 추억들은 길을 잃고 어디서 헤매게 될까?

최근 10년 사이에 나의 단골집들 가운데 문을 닫은 곳들이 많다.

여름철 콩국수가 천하일미였던 '종로칼국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폐업했고, 항상 웃는 낯으로 나를 반겨주던 가성비 으뜸 '안성순대'는 가게를 비워 달리는 건물주의 말에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남문닭곰탕집'은 앞집으로 확장 이전한 뒤 주인이 사망하는 바람에 사라졌다.

오랜 세월 나와 함께 한 이 노포들의 특징은 맛이 좋고 값도 쌌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인장들의 인심도 좋았다. 이 가게들이 있었던 길을 산책할 때마다 내 생애의 지나간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다보게 된다.

이젠 다담마저도 2026년 3월 15일을 마지막으로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니, 어허...

여보게들, 15일 전에 한번 여기서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