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96)] 조병하 '발효 꽃'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발효 꽃

             

                     조 병 하

 

귀 떨어진 소반을 껴안고 

어머니 콩 고르신다

 

불어난 몸 가마솥에 열기 오르고

지푸라기 끌어안고 아랫목 누워

널브러지게 긴 잠을 청하는 너

 

꿈꾸는 발효가 맴도는 공간

끈끈이 실 들러붙은 쿰쿰한 냄새

코를 막는 고 녀석들 짓궂은 미소

         

퇴근길 날아든 메시지 한 통  

옆집 문틈 들여다볼라, 꼭꼭 숨어서 먹거라   

밥상머리 발효된 콩꽃이 핀다

 

그때는 그랬다. 일 년에 한 번 메주를 쑤는 일은 집 안의 큰일 중 하나였다. 우선 길일을 잡아야 했다. 간지로 따져서 신(辛)이 들어가는 날은 피했다. 장맛이 시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메주를 쑤는 날은 어린아이들도 신나는 날이었다. ‘귀 떨어진 소반을 껴안고/어머니 콩 고르신다’로 메주 쑤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콩을 고르는 일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메주 쑤기가 시작된다. 시인은 ‘불어난 몸 가마솥에 열기 오르고/지푸라기 끌어안고 아랫목 누워/널브러지게 긴 잠을 청하는 너’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 다른 기억을 안고 있다. 메주콩이 다 익을 무렵 가마솥 근처를 떠나지 않고 얼쩡거린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다. 그때 어머니가 주시던 다 익은 메주콩 맛이 그만이었다. 

잘 익은 메주콩을 절구에 넣어 찧고 메주의 틀을 잡아 새끼줄로 매단 다음 어느 정도 마르면 따뜻한 방 안에 넣어 놓고 본격적으로 발효를 시킨다. 시인은 그 공간을 ‘꿈꾸는 발효가 맴도는 공간’이라고 했다. 결코 좋은 향기는 아니다. 

‘끈끈이 실 들러붙은 쿰쿰한 냄새/코를 막는 고 녀석들 짓궂은 미소’라고 했듯이 그 냄새에 뒤로 돌아섰으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냄새. 이제 도시에서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누구도 집에서 메주를 쑤고 장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메주를 쑬 가마솥도 없지만 정작 발효라도 시킬 양이면 모르긴 몰라도 그 냄새에 이웃집의 항의가 들어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그 번거로운 과정을 감당할 사람도 흔치 않다. 마트에 가면 용기에 담긴 메주가 얼마든지 있다. 편한 세상이다. 그 편안함의 틈새로 스며드는 허전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데 ‘퇴근길 날아든 메시지 한 통’. 아마 시골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보내신 것이었으리라. ‘옆집 문틈 들여다볼라, 꼭꼭 숨어서 먹거라/밥상머리 발효된 콩꽃이 핀다’ 발효꽃이라니. 이런 말씀의 씨앗을 아름답게 글 속에 심는 이가 시인이다. 메주가 콩으로 만든 여느 음식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발효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메주에 스는 곰팡이를 발효꽃이라 했다. 콩꽃이라고도 했다. 

들에 나가면 하마 냉이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계절이다. 새로운 봄을 알리는 나물 내음 가득한 된장찌개가 식탁 위에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생각에 젖어보는 그런 저녁이다.

 

 

조병하 시인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