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97)] 표문순 '옹이의 형식'
옹이의 형식
표 문 순
참나무의 여기를 배꼽이라 불러보자
별스럽게 떨어져 나간 큰 가지의 태胎처럼
중심을 구성하고 있는 무늬가 크고 깊다
오빠가 잡아 오던 풍뎅이며 사슴벌레
내 손엔 닿지 않아 우러르던 이곳에서
건장한 뿔이 자라고 날개가 날아올랐지
가장 숭고한 형태로 남아있는 상처에서
이유 없이 탄생했던 숱한 생명과 울음들
묵묵히 서서 쓰고 있는 감탄형의 저 문장
야무지고 단단한 역설이다.
살아서 제 나름 뻗었으면 능히 튼실한 가지 하나가 되었을 터이다. 그 가지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우듬지는 또 새로운 시공과 은밀한 생명의 교섭을 벌였겠지. 그런데 그 가지가 무슨 연유로든 떨어져 나가고 그루터기만 남은 흔적이 옹이이다. 그래서 흔히 옹이는 가슴속에 오래 맺혔다가 이내 앙금으로 남아 굳은 마음의 흉터를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옹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바라본다. ‘묵묵히 서서 쓰고 있는 감탄형의 저 문장’이라며
고사목인지 혹은 살아있는 나무인지 짐작할 길은 없다. 또 그 분별이 딱히나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옹이의 자리 즉 그 형식이 지니는 의미이다. 잔가지가 떨어진 자리에서는 옹이가 생기지 않는다. ‘별스럽게 떨어져 나간 큰 가지’였기에 옹이가 생겼다. 뿌리부터 시작한 가지가 나무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다. 정작 나무는 뻗은 가지가 햇살을 받고 대기와 들숨과 날숨을 나누어 온전한 생명을 이룬다. 그러니 그 가지는 탯줄이며 옹이는 탯줄을 잘라낸 배꼽이다. 그래서 저처럼 ‘무늬가 크고 깊다’고도 하였다.
그 자리엔 생명에 대한 유년의 경외(敬畏)가 있다. 어린 ‘내 손엔 닿지 않아 우러르던 이곳’에 ‘풍뎅이며 사슴벌레’의 ‘건장한 뿔이 자라고 날개가 날아올랐’다고 한다. 하여 옹이는 단순한 흉터가 아니다. ‘가장 숭고한 형태로 남아있는 상처’이다. 시인은 ‘이유 없이 탄생했던 숱한 생명과 울음들’의 증거인 옹이를 ‘묵묵히 서서 쓰고 있는 감탄형의 저 문장’이라고 새롭게 읽는다.
현대시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별 배행이나 산문으로 길어진 사설도 보이지 않는다. 3장으로 된 전통적 평시조 형식을 3연으로 벌인 연시조이다. 지극히 전통적인 형식이다. 그렇기에 단아하다. 또 단단하다. 시의 형식과 옹이의 형식이 어우러져 눈길이 머문 옹이에서 나도 감탄형 문장을 읽고 싶다.
표 문 순 시인
2014년《시조시학》신인상 등단
시조집『공복의 구성』(문학나눔 선정), 『저음의 슬픈 연대』
정음문학상 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