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98)] 최한결 '겨울 보리'
겨울 보리
최 한 결
고독도 벗이라고 어르고 살아가며
아픔도 슬픔도 약이라고 여기면
때때로 눈이 내리어 포근히 보듬나니
손이 몹시 곱으면 호호호 입김 불고
꺾이고 쓰러지면 온몸의 피를 돌려
실뿌리 깊게 내리며 몸을 바로 세운다
종달새 솟구치는 정경을 그리면서
보릿고개 넘던 시절 곰곰이 새겨본다
지열을 길어 올리며 푸른 봄을 빚으며
그랬다. 그 고개가 아무리 높고 험하여 넘기 힘들더라도 보릿고개만 했을까. 빈가의 쌀독은 섣달이 채 가기도 전에 텅텅 비고, 모진 겨울의 추위와 더불어 배고픔까지 견뎌야 했다. 그래 나가보는 한겨울의 보리밭이었다. 그 보리밭에서 위안을 받았고 희망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조는 최한결 시인이 2022년 《한국시학》 겨울호에 발표한 ‘겨울 보리’의 전문이다.
맞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벗이라고 어르고 살아가며’, ‘아픔도 슬픔도 약이라고 여기면’ ‘때때로 눈이 내리어’ 우리네 가난을 ‘포근히 보듬’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손이 몹시 곱’아서 ‘호호호 입김 불’어야 하지만 눈 덮인 땅에서 비록 ‘꺾이고 쓰러지’더라도 ‘온몸의 피를 돌려/실뿌리 깊게 내리며 몸을 바로 세’우는 게 보리였고 민초의 강인한 생명력이요 그 의지였다.
격세지감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보리타작이 끝나면 비록 깡보리밥이나마 고봉으로 퍼주시던 그분이 이 땅에 아니 계시듯 모든 게 다 그리움이다. 시인은 겨울 보리를 떠올리며 ‘종달새 솟구치는 정경을 그’려 본다. ‘보릿고개 넘던 시절’도 더불어. 그리고 한겨울일지언정 ‘지열을 길어 올’려 ‘푸른 봄을 빚’던 그 강인했던 생명력을 반추한다. 우리네는 그렇게 한겨울을 건너왔다.
요즈막이 보리 순이 가장 연하고 부드러워 홍어 애탕에 제맛을 더해주는 철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 보리밭을 보기가 쉽지 않다.
최한결 시인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
시조집 『씨알을 묻다』 등
경기시조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