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99)] 권명곡 '봄비가 내릴 때'
봄비가 내릴 때
권 명 곡
흙먼지 잠재우며 하늘은 온 대지에
봄비를 보듬으며 소리 없이 내려준다
포근한 바람을 안고 연인처럼 다가온다
잠자는 속살까지 촉촉이 스며들어
흙덩이 비집으며 살며시 눈 뜨게 할
초목에 물이 오르고 연둣빛 음표 난다
겨우내 움츠리던 가지에 살포시 와서
초록의 꿈 자락을 대롱대롱 달아준다
봄비는 목마른 사랑 채워준다 촉촉하게
기껏 애써 세차를 해 놓았더니 비가 내려 헛수고가 됐다. 여느 때 같았으면 다소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전혀 언짢지 않았다. 봄비기 때문일까.
위의 시조는 권명곡 시인이 2019년 《한국시학》 여름호에 발표한 「봄비가 내릴 때」 전문이다. 발표는 여름호에 하였지만, 이 계절에 쓰지 않았을까 싶다. 시 전반에 나타나는 색감이나 촉감 모두 4월 초에 부른 노래이다.
그렇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려도 새 생명을 일깨워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대지는 그저 ‘흙먼지’일 뿐이다. 시인은 ‘봄비가 내린다’라고 하지 않고 ‘내려준다’고 했다. 절대적 힘이 베푸는 은총이다. 그렇다고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연인처럼’ 곁으로 온다.
그 빗방울이 ‘속살까지 촉촉이 스며들어’ 새싹들의 눈을 띄울 것이다. 요즈막의 숲과 들은 강렬한 초록빛 향연이 아니다. 그저 수줍게 배시시 웃는 연둣빛이다. 그 봄비는 겨우내 목말랐던 우리네 사랑을 새롭게 채워 줄 것이다.
오는 일요일은 식목일이기도 하지만 청명이다. 봄날의 가랑비가 나그네의 옷자락을 적시는 계절이다. 만당(晩唐) 때의 시인 두목(杜牧)의 절창이 새삼 떠오른다. 봄비가 흩날려 나그네의 가슴에 시름으로 적시는데 소치는 아이에게 술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살구꽃 피는 마을을 가리켰다는데.
일기예보에는 내일과 모레 또 비 소식이 있다. 시나브로 내려오시는 봄비에 살구꽃 몇 잎 덩달아 져 마당에 깔린 그런 주막 어디에 없을까. 에이 말자. 술도 끊었으면서. 그래도 봄은 봄이다.
권명곡 시인
《문파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콤한 오후』
동남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