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이 봄날, 화성(華城)은 ‘울긋불긋 꽃대궐 화성(花城)’이 됐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팔달산 고향의 봄 노래비 옆 살구꽃. (사진=김우영)
팔달산 고향의 봄 노래비 옆 살구꽃. (사진=김우영)

하아, 봄 색시도 아닌, 늙어가는 칙칙한 사내인데 왜 자꾸 시선은 화성성벽 주면에 무더기로 핀 꽃들에게 향할까?

오후 산책길, 발걸음은 저절로 벚꽃, 살구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만개한 화성 성곽으로 향한다.

장관이다. 동남각루-봉돈 사이 성벽 안쪽 언덕에는 샛노란 개나리가 또 하나의 화려한 성벽을 이루고 있다.

북암문과 각건대 안쪽 삼일공고 앞에도 벚꽃들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서남각루에서 팔달산으로 올라가는 성 밖 길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성 안쪽에는 개나리가 화사하다. 그 아랫마을 민가에는 거대한 목련이 꽃을 피워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래도 역시 봄 벚꽃구경은 팔달산 회주도로와 연무동 광교저수지 수변 산책로가 최고다.

서북각루에서 팔달산 방향 개나리꽃과 벚꽃. (사진=김우영)
서북각루에서 팔달산 방향 개나리꽃과 벚꽃. (사진=김우영)
팔달산 회주도로 성신사 앞 벚꽃. (사진=김우영)
팔달산 회주도로 성신사 앞 벚꽃. (사진=김우영)
동북포루(각건대) 안쪽 벚나무 군락지. (사진=김우영)
동북포루(각건대) 안쪽 벚나무 군락지. (사진=김우영)

일찍 핀 벚꽃은 어느새 꽃비를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 받은 한국시학 2026년 봄호에 실린 구향순 시인의 ‘꽃을 조문하다’가 떠올랐다. 구 시인은 현재 수원시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봉사하는 묵묵한 시인이다.

 

‘지구의 열이 갑자기 올랐다/때 이른 봄기운에 몸을 비트는 벚나무들//난산이다/튀밥처럼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미숙아들//무성한 적막이다/꽃잔치를 즐길 꿀벌들은 잠들어 있는데//첫 이렛날 폭우가 쏟아졌다/젖먹이를 떼어내는 비정한 손길처럼//종일 바람이 운다/젖몸살로 울부짖는 애처로운 어미들//어긋난 축제일 현수막이 홀로 지키는 빈소//꽃을 조문하고 오는데 느닷없이 신열이 났다/불현 듯 사는 것이 몹시 낯설다’ -구향순 ‘꽃을 조문하다’ 전문

 

시인들은 확실히 범인(凡人)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본다.

폭우와 바람에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면서 ‘젖먹이를 떼어내는 비정한 손길’과 ‘젖몸살로 울부짖는 애처로운 어미들’을 떠올린다. 떨어진 ‘꽃을 조문’한다. 그래서 바람소리는 ‘울음’이다.

그런데 어쩌랴, 아이를 낳아보지 못했고 젖몸살도 체험하지 못했던 나에게 낙화는 축복이다. 꽃비가 내릴 때도 일부러 찾아가는 비정한 시인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전문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감동받은 윤동주의 ‘서시’ 그리고 김소월의 ‘초혼’에 이어 나를 울린 몇 안 되는 시들 중 하나다. 그리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명시이기도 하다.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섭리를 슬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별을 겸허히 수용하는, 그리하여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라니.

그는 필시 성자(聖者)일 것이다.

개화(開花)도, 낙화(落花)도, 결실(結實)도, 낙과(落果)도 예정돼 있으니...화성을 걸으며 꽃구경에 심취한 김우영이란 이름의 이 자도 필시 그 예정에 들어 있으려니...

오늘도 그냥 걷던 길이나 가야겠다. 가끔씩은 뒤도 돌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