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65)]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사람도 예술작품도 자신의 상태와 분수를 헤아려야 하지만 상대도 감상자도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고 감상 정도와 의의 부여도 진전될 수 있다. 관계의 객관성 정도를 더욱 고려해야 할 이 문제, 하지만 관심과 성의 여부에 따라 음미와 향유에 두루 차이가 있어, 쉽게 저어한다면 성급하다고 하겠다. 결국 최종 조정과 판단은 작품 자체에 귀속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며칠 전에 고독성 치매를 앓기 시작하는 백세 노모 곁에 있다가 뜻밖에 노모가 부르는 가요를 들었다. 「노들강변」 1절. 지난 평생 노모로부터 이 노래뿐만 아니라 노래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연고를 여쭈었더니, 14살 무렵에 노래 잘하던 친정 올케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방송 매체에서 이 노래를 여러 차례 듣긴 하였고, 인생의 무상과 한탄을 토로하는 가사와 민요조 가락에 일시 끌리기는 했으나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감상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를 필자처럼 민요로 여겼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가사가 1934년에 창작되었다.(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 당대 사람들이 즐겨 듣고 애창했고, 탄생 동기도 주목할 만하다. 20세기 초부터 밀려들어왔던 서양음악과 일본음악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조선음악의 지속을 바라던 염려와 의지의 실천으로 등장한 신민요였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無情歲月)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萬古風霜)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워갔나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
재자가인(才子佳人)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 쌓인 한(恨)이나 두둥 싣고 가거라
- 신불출(申不出 : 1905-1976)
1절 3행이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2절 3행이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으리로다’란 이본도 있는데, 상기대로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을 이로다’라야 전체 맥락에 어울린다. 이본에서도 3절 1행은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로 동일한데, ‘푸른 물’을 화자가 ‘네’라고 의인화하는 국면을 주목하면 1, 2절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봄버들’과 ‘백사장’도 화자가 같은 시선으로 접근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표기의 차이가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또 의인법(擬人法)이 흔한 수사법이지만 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가사의 공간인 한강 ‘노들강변’의 주요한 표적이자 이미지인 ‘봄버들’ ‘백사장’ ‘푸른 물’을 화자가 어떻게 보고 있느냐, 특히 가장 크게 부각되는 ‘푸른 물’을 어떤 태도로 접근하느냐, 즉 화자가 의식 못하기 쉬운 관계시(關係視)의 저변을 알 수 있다.
이본대로라면 그냥 화자가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일으키는 객체 대상에 그치지만 의인화 적용 시행이라면 그것들을 동류로 인식하는 화자의 동일시 세계관과 정서가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의인법은 단군신화를 비롯해 인류의 시원 신화에서부터 등장한, 인간이 사물을 동반의 관계로 인식하고 그 물성과 이치를 상호 유추하는 유구한 방법이며, 나아가 세계와 사물을 이용 대상으로 접근하고 착취하는 오늘날의 인간에게 그 절제에 기여할 철학으로도 더욱 강조되어야 할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2절 2행 ‘만고풍상(萬古風霜)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워갔나’는 원문이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여갔나’이다. ‘지여갔나’를 언제부턴가 ‘지나갔나’ 또는 상기대로 ‘지워갔나’라고 표기하는데, ‘비바람’이 ‘모래’위의 ‘자죽(자국)’, 즉 인생의 흔적을 불어 없앴다는 취지인 ‘지워갔네’로 읽어야 무상의 정서 현출에 더 어울린다고 하겠다.
아무튼 이 가사의 1절에서는, 흐르는 세월을 ‘봄버들 가지’에 ‘동여매어’ 정지시키고 싶다고 하면서도 ‘봄버들’도 사람과 같아 변모하며 늙어가기에 믿을 수 없다고 각성한다. 다만 ‘푸르른 저기 저 물’만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시간처럼 정지 없이 ‘흘러 흘러’간다고, 각성과 이치를 종합해 새삼 탄식해마지 않는다. 그런데 ‘푸른 물’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경은 ‘봄버들’과 달리 인정과 원망이 교차해 이율배반의 모순에 가깝다.
2절에서 화자는 그런 제약에서나마 이룬 삶을 ‘백사장’에 난 발‘자죽’에 은유하고, 이마저도 ‘만고풍상 비바람’ 같은 세월에 모두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또 ‘만고’에 해당하는 유구한 횟수로 거듭 거듭 지워져갔다고 탄식한다. 이 인식은 화자가 느끼고 있는 무상의 원천에 해당한다.
3절에서 화자는 이상 회포를 마무리한다. 1절에서 원망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했던 흐르고 흐르는 ‘푸른 물’을 화자는 거듭 불가역의 태도로 바라보며, 동시에 ‘세월’과 동일시하면서 원망의 심정이 보다 짙어진 상태에서,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특히 ‘재자가인(才子佳人) 아까운 몸’도 그렇게 ‘무정’하게 ‘데려갔’다고 하며, ‘푸른 물’답지 않은 이 행태는 ‘망령(妄靈)’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호소하듯 원망하고 나서, 화자는 드디어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에 쌓인 한(恨)이나 두둥 싣고 가거라’고 소망한다. 인간은 늙고 죽고 삶의 흔적도 사라지지만, 사람들의 ‘한’만은 사라지지 않고 이 세속에 잔존한다고 화자는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지만 화자가 ‘푸른 물’에게 호소한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달라고 진정 바랐을까. 이 가사의 전체 맥락으로 보아 화자는 처음부터 시공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운명을 너무 잘 알고 있다.
1934년에 조선음악의 부흥을 위해 탄생한 이 노래의 내력도 그렇지만, 부각된 ‘한’ 역시 심상치 않다. 더욱이 작사자 신불출(申不出)은 예명[본명 신흥식)이며, ‘불출’은 일제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풍자성 자조와 자학이 그 취지라고 한다. 그 ‘한’에 피식민 시대의 당연히 비애와 저항도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런 시대를 초래한 이전 세력을 야유 저주하는 조소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제일의 만담가로 유명했던 신불출은 해방정국 시기 월북하였다. 북한을 옹호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만담 활동을 하였고, 관료체제와 대본 검열을 풍자하다가 1962년에 남로당 잔당으로 숙청당했다. 요덕수용소에서 부인 이양초와 가혹한 노동과 영양실조로 시달리다가 1976년에 사망했다는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민 김영순 씨의 증언이 있다. 결국 이런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고 어찌 신불출 자신이 1934년 당시에 예상할 수 있었겠나만 가사가 사망 전후의 처지와 공교롭게 부합된다. 신불출을 그런 운명에 이르게 한 자들도 마치 무슨 절대 같았던 시대 여건들도 역사의 ‘비바람’에 모두 ‘지워’졌다. 유지자의 기억과 의지에만 남아 있을 뿐. 오늘도 ‘노들 강변’에 ‘봄버들’과 ‘백사장’이 있고, 한강의 ‘푸른 물’이 그때처럼 ‘흘러 흘러’가고 있다. 노모가 2절과 3절도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복잡하고 험난한 시대와 사연에 관련된 이 노래가 앞으로는 이전과 달리 평범한 감상(感傷)의 전개로 들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