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이것이 화성 성안에 사는 기쁨일세”
10여 년 전 정년퇴직을 앞두고 행궁동에 방 한 칸을 마련했다. 나이 든 남자들의 로망,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성안이었을까?
아주 오래 전 화성연구회 모임이 끝나고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기 때문에 성안에 집을 마련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 때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후 성안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런데 2013년 '생태교통 축제'가 성안에서 열리고 난 후 눈에 띄는 현상이 나타났다. 슬럼화를 걱정했던 신풍동 지역에 카페와 퓨전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었고 거리에 젊은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땅값, 집값, 월세가 폭등했다. 이런, 이런... 그때 있지 않은 처갓집 빚을 내서 싼 집이라도 한 채 사둘걸. 하긴 그런 혜안이 있었으면 난 진즉에 부자가 되었을 터이다.
집은 사지 못했지만 작으나마 내 공간을 하나 마련한 뒤 꿈꿔오던 ‘성(城)안 사람’ ‘문(門)안 사람’으로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예 내 주민등록 주소지도 행궁동으로 옮겼다.
성안에 사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지척에 화성행궁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성행궁은 나와 인연이 깊다. 몇 차례 칼럼을 통해 밝혔지만 나는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위원(홍보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복원에 작은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이 크다.
봉수당과 함께 화성행궁 중심 시설 가운데 하나인 유여택의 상량문도 내가 썼고, 그 상량문은 유여택 대들보에 들어가 있다.
화성 성곽은 내 산책로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성안으로, 다른 날은 성벽 밖으로, 마음이 가는대로 걷는다. 전세계 사람들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내 앞마당처럼 매일 걷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걸으면서 행복을 느낀다. 건강은 덤이다.
성 안팎으로는 전통시장이 모여 있어 더더욱 마음에 든다. 팔달문 인근의 시장엔 옷·신발·가방부터 고기, 생선, 반찬 등을 파는 시장과 순대타운 등 없는 것이 드물다. 이곳도 내가 사랑하는 산책로이다.
행궁동 골목들도 내게 활기를 준다. 이곳에는 젊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항상 가득하다. 내 나이에 불쑥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밝은 청춘의 무리에 함께 섞여보면 나 또한 청년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또 다른 재미는 혹한기와 혹서기를 제외하고 끊이지 않고 열리는 축제와 공연을 보는 것이다. 수원화성문화제, 수원 국가유산 야행, 미디어아트쇼, 무예24기 마상무예공연 등이 내 우거(寓居)의 지척에서 열린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미술관도 성안에 있으니 언제라도 들러 전시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느덧 내 나이 칠순이 되었으니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도 많다. 사뎅이를 파는 장안식당, 지동시장 순댓국밥집, 밥이 맛있는 동흥식당, 소머리국밥이 최고인 충남집, 최근에 생긴 백반집 송이네밥상, 푸짐한 인심의 대왕칼국수, 가성비 좋고 주인의 인심이 후한 예술가밥집, 그리고 통닭에 생맥주가 당길 때 들르게 되는 혜미통닭과 화성연구회 2차 모임 때 가는 대봉통닭, 다담이 없어진 뒤 새로 생긴 ‘참새방앗간’ 방방...
물론 안 좋은 점도 있다. 내가 늘 거기에 있는 것을 아는 자들의 호출이다. 아니다. 그렇게라도 불러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앞으로도 잊지 말아다오. 웬만하면 뛰쳐나갈 터이니.
아무튼 ‘성안 살이’에 만족한다. 내 얘기를 들은 후배 시인 이종구(수원민예총 문학위원장)도 내가 사는 건물로 주거지를 옮겨왔다.
이 시인, 이제쯤 화성 성안, 문안에 사는 즐거움에 푹 빠지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