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전자 노조의 무리한 성과급 요구, '모두의 패배' 경계해야

김진호 / 북부취재본부장

- 과거 세트 부문의 뼈아픈 희생 잊었나···부문 이기주의 넘어 상생의 지혜 발휘할 때

- 천문학적 투자 필요한 반도체, 당장의 이익 분배 매몰되면 기업 기초 체력 잃는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반도체 부문 노조의 성과급 배분 요구가 거세지면서 자칫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의 경쟁력 훼손은 물론 '모두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작금의 사태는 단순히 노사 간의 이익 다툼을 넘어 삼성전자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왔는지를 망각한 데서 비롯된 아쉬움이 크다.

1969년 창사 이래 삼성전자는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했다. 특히 1983년 '도쿄 선언'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반도체 사업은 초창기 막대한 개발비와 기술적 불안정성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당시 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메워준 든든한 버팀목은 다름 아닌 호황을 누리던 수원사업장의 세트(완제품) 부문이었다. 세트 부문은 자사 컬러TV 등에 초기 반도체 부품을 테스트용으로 선뜻 적용하며 겪은 품질의 어려움마저 묵묵히 감내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뼈아픈 희생은 세트 부문의 몫이었다.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는 당시 재무 책임자의 증언처럼 참담했던 위기 속에서 세트 부문 직원들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아들이며 회사를 살리는 데 동참했다. 

그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 덕분에 반도체 부문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하고 투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보르도 TV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석권하고 메모리 반도체 역시 세계 제일의 반열에 오르며 지금의 '초일류 삼성'이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볼 때 작금의 삼성 반도체는 현재 근무하는 사원들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과거 선배들의 피와 땀 그리고 타 부문의 희생 위에 쌓아 올린 금자탑이자 국민기업이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생산했던 256MB 용량의 USB 메모리. (사진=김진호 기자)
과거 삼성전자에서 생산했던 256MB 용량의 USB 메모리. (사진=김진호 기자)

철저한 성과주의가 임직원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것이 부문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지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삼성전자는 부품(DS)과 세트(DX)가 결합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다. 반도체 부문에서 막대한 이익이 발생했다는 것은 역으로 세트 부문에서 그만큼의 부품을 비싸게 사용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부문별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전체의 숲을 보지 못하면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무엇보다 반도체는 현재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천문학적인 R&D(연구개발)와 설비 투자가 끊임없이 선행되어야 하는 사업이다. 

당장의 장부상 이익에 취해 모든 것을 나누어 먹는 데만 급급하다면 다가올 경영의 혹한기를 버텨낼 기초 체력(펀더멘털)은 순식간에 고갈되고 말 것이다. 기업 경영은 룰과 프로세스의 엄격한 관리이며 냉혹한 평가와 혁신의 연속이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영 후퇴는 단순히 일개 기업의 실적 하락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수많은 국민이 삼성전자의 주주이자 든든한 응원군임을 기억할 때 이는 대한민국 경제 전체에 불어닥칠 치명적인 손실이다.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과거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 이번 사태를 적절히 풀어가는 냉철한 조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