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01)] 홍사용 '시악시 마음이란'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시악시 마음이란

      - 민요(民謠) 한 묶음·2

                                      홍  사  용

 

왜 또 우나요 봄사람 너무 울면 시드나니

타락(酡酪) 송아지 “엠매―” 할 제 무에 그리 서러워

실없은 말 하면은 얼굴이 붉고

진정(眞情) 대로 달래면 돌아나려라

그도 저도 말 없으면 가만한 한숨

시악시 마음이란 여울목 달빛

온달도 반(半)달인 양 대중도 없지

네 나이 열아홉 살…… 봄꿈은 개꿈

 

왜 또 우나요 봄사람 너무 울면 시드나니

타락(酡酪) 송아지 “엠매―” 할 제 무에 그리 서러워

뉘 손에 꺾일 건가 걱정도 없이

이름 모를 딴 시름 온밤을 새워

붉은 입술 다문 대신 느낌만 잤지

시악시 마음이란 덤불의 메꽃

핀 꽃도 진 꽃인 양 이슬에 젓네

네 나이 열아홉 살…… 봄꿈은 개꿈

(『三千里文學[삼천리문학]』 1호, 1938년 1월)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시조 시인 유선 선생님이셨다. 나는 선생님의 젊으셨던 모습보다도 선생님이 노작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낭송하시던 그 맑고도 카랑카랑한 음성을 더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노작 홍사용을 만났다.

시인이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발표한 해는 1923년이었다. 3.1운동의 외연적 실패로 민족의 내일이 암울하던, 따라서 병적 감상적 낭만주의가 우리 시단의 주조를 이루던 때이다. 시인 스스로 ‘눈물의 왕’일 수밖에 없었음이리라. 그 후 1930년대에는 우리네 민요조 시에 몰두하여 일련의 시들을 발표한다. 위의 시 「시악시 마음이란」도 그중의 한 편이다. 

이 시도 여전히 ‘너무 울면 시드나니’, ‘무에 그리 서러워’, ‘가만한 한숨’, ‘이름 모를 딴 시름’ 등 시어의 지시적 의미만을 보면 애상적 정조가 시적 화자의 중심 어조를 이룬다. 그런데 시의 제목이 「시악시 마음이란」이다. 그 애상적 정서 위로 오버랩 되는 열아홉 ‘시악시’의 원초적 생명력 혹은 설렘을 읽는 게 이 시의 묘미일 수 있다.

하필이면 송아지도 ‘타락(酡酪) 송아지’란다. 타락은 우유를 일컫던 옛말이다. 요즘 식으로 말을 바꾸면 젖소의 송아지라고 볼 수 있다. 원형적 모성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송아지가 울 때 시악시 마음은 서럽고 얼굴은 붉어진다. 왜 그럴까. 설명이 필요 없다. 그 까닭을 짐작해 보는 게 이 시를 읽는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기쁨이고 호사이다. 

메꽃이 피려면 아직은 좀 이르다. 하지 전후 피기 시작하여 한여름 우리네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메꽃이다. 그 꽃덤불 속에 다소곳이 그러면서도 야무지게 자리 잡은 시악시 마음이란 지나간 봄철 한나절의 꿈도 ‘핀 꽃도 진 꽃인 양 이슬에’젖는 ‘개꿈’이란다. 

이 시의 부제가 ‘민요(民謠) 한 묶음·2’이다. 짧은 글에서 민요 그것도 여성들이 부르던 부요(婦謠)의 사회적 기능이나 문학적 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단지, 어쩌면 시집도 가지 전에 물레나 베틀에 앉아 밤을 새워야 하는 처녀들의 설렘이 ‘봄꿈도 개꿈’이라는 자조 속에 뒤섞인 노동요이자 민요가 될 수도 있음에 착안한 시라는 짐작만 해본다.

 

홍 사 용 시인

1900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용수골)에서 출생

1907년 본적지인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 492번지로 돌아옴

1919년 휘문 의숙 졸업, 3․1 운동에 참가하여 일경에 피검

1920년 박종화 등과 문우 창간, 시 「커다란 집의 찬밤」을 발표

1922년 박종화, 현진건, 박영희 등과 백조 창간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1922)

        「봄은 가더이다」(1922) 「나는 왕이로소이다」(1923)

        「시악시의 무덤」(1923)

1947년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