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과 발 동동 구르는 임산부, ‘배려’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김진호 북부취재본부장

 

- 위법한 ‘무늬만 장애인 차량’ 퇴출로 확보된 공간, 임산부에게 실질적인 주차권 부여해야

- 출산율 0.74명의 위기 속, 새생명을 잉태한 기쁨이 임산부의 비좁은 한 뼘 사투가 되지 않기를

매일 아침 서울과 수도권 대형 병원의 주차장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휠체어 마크가 선명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한산한 반면 그 옆 일반 주차 구역에서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운전석에서 힘겹게 내리는 임산부들의 사투가 벌어진다.

문을 활짝 열지 못해 비좁은 틈 사이로 배가 압박될까 노심초사하며 몸을 구겨 넣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 교통약자 배려 시스템의 ‘불균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늬만 장애인 차량’은 명백한 위법… 양심의 가책마저 사라진 주차장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이용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주차가능 표지 부착’과 ‘보행상 장애인 본인 탑승’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법적 정당성을 갖는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안내 표지판 (사진=김진호 기자)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안내 표지판 (사진=김진호 기자)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표지만 붙인 채 장애인 없는 보호자 단독 운행 차량이 해당 구역을 당연한 권리인 양 점령하는 광경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부정 사용은 단순한 얌체 주차를 넘어 실제 보행이 불가능한 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범죄이자 정작 도움이 필요한 다른 교통약자의 기회를 박탈하는 기만행위다. 

단속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방치하는 사이 주차장은 법적 사각지대 속에서 양심의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

출산율 0.74명의 시대, ‘임산부 배려’는 시혜가 아닌 국가적 생존 전략

대한민국은 지금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넘어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2024년 기준 합계출산율 0.74명. 인구 유지를 위한 대체출산율인 2.1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이 수치는 국가 소멸의 경고등이다. 

국가의 미래를 이어갈 다음 세대를 품은 임산부들은 이제 국가적으로 가장 극진히 보호받아야 할 ‘전략적 대상’이다.

특히 직장 생활과 정기 검진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 주차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신체적 위협이다. 배가 불러올수록 임산부가 일반 주차 칸에서 벌이는 ‘한 뼘의 사투’는 가혹하다.

새생명을 잉태한 기쁨을 안고 찾은 병원에서 비좁은 차 문 사이로 몸을 구겨 넣으며 겪는 물리적 고통은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주는 수치심과 다름없다. 현재 지자체 조례에 근거한 ‘권고’ 수준의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으로는 이들의 안전을 결코 담보할 수 없다.

‘파이 나누기’가 아닌 ‘위법 단속을 통한 효율적 배분’

이제는 장애인과 임산부의 권리를 충돌시키는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적 조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위법 차량을 철저히 퇴출하여 확보된 공간을 임산부에게 개방하는 실질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 법령 개정을 통한 주차권 부여: 「편의증진법」 상의 전용 주차구역 이용 대상에 임산부를 명시적으로 포함하여 법적 자격을 명문화해야 한다.

⊙ 과학적 관리 시스템 구축:  IT 강국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활용해 실시간 탑승 인증이나 IoT 기반 스마트 주차 차단기 설치를 대형 시설부터 의무화하여 위법 주차는 원천 차단하고 임산부의 접근성은 높여야 한다.

⊙ 단속의 실효성 강화:  ‘표지 부착’과 ‘보행상 장애인 탑승’이라는 두 조건을 모두 갖추었는지 엄격히 대조하여 적발 시 과태료는 물론 표지 도용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해 부정 사용이 명백한 범죄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6.3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텅 빈 주차 공간을 앞에 두고 차마 내리지 못해 발을 굴러야 하는 임산부들의 고충을 행정의 최우선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하라. 그리고 행정 관청은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소극적 변명 뒤에 숨지 마라.

임산부가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차에서 내려 병원 문을 향할 수 있도록 ‘마음껏 차 문을 열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출산 0.74명의 절벽 아래에서 미래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