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70)] ‘초강력 뇌우(雷雨)로 온/바람’

김승종 / 시인·전 연성대 교수

 

 어떤 시는 읽는 대로 인식 조성이 진행된다. 그렇다고 오관(五官)의 정서와 융합되어 심미성 고양을 체험할 수 있을지는 별개지만. 어떤 시는 거듭 읽어도 인식이 잘 형성되지 않아도 매력에 끌려 그 이해 추구를 그만 두기 어렵다.    

 

바람은 죽었는가 아니다 天然하고 있다.

바람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바람은 만져지기도 하며, 눈에 보이는 듯

하나, 그냥 흔적도 없이 금방 사라진다~.

거센 폭풍과 해일인 초강력 뇌우雷雨로 온

바람은 지존, 어디서나 스스로 자유롭다네.

 

소나무~丹心이 휘어지도록 한 바람은

한여름 저~ 녹음방초의 푸르름을 어디론가

휘몰아 홀리듯이 데려가는 것일까? 바람은

동굴에도 있고, 소낙비에도 있고, 갈대밭의

흰 눈 나래로, 구름 먹은 바람꽃도 있다.

아기단풍~赤心마저 휘어져 버린 바람은

늦가을 저 만산홍엽 단풍색도 빛바랜 듯이

어디로 슬슬 데려가는 것일까?

ㅡ소문난 때깔로 온 바람은 마녀처럼 아주

가까이서 불로 속삭이고 있구나

 

바다와 하늘 잇는 용오름 회오리바람에

소리솟구친 하늘물고기라도 法水세상.

ㅡ바람은 소문을 멀리 데려가기도 하지

 

때론 한겨울이어도 바람은 꽁꽁 얼지도

않지만,- 유리창의 성에꽃 속에서도

살아나 탱탱하게 울어야 찬바람이다.

더 세차게 울어야~[:꽃향기]~바람인데

 

여린 풀이 휘어지나 거세게 버텨냈든가.

지나가기만 하면 꽃나무 다 말라서 죽는

불지옥天動소리~바람인 강철이 용이여!

이 모든 일을 바람만은 모르고 있다네

 

    - 「바람은 스스로 알고 있는 듯 행한다네」/최수호

 

 이 시를 읽으며 ‘바람’의 세계에 이해와 공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는 몇 미결 사항으로 하여 그 진척이 활발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화자가 1연 1행에서부터 부각하는 ‘바람’이 바람이면서도 무엇을 지칭하는지 그 추정에 직결된 ‘天然(천연)’ 자체의 뜻이 모호해 유보하게 된다. 평소처럼 ‘품부된 천성 그대로’나 ‘어떤 가미나 변형 없이 있었던 그대로’라고 하기에 주저할 것이다. ‘바람은 죽었는가’와의 대비가 미흡하고, ‘하고 있다’와 결합한 형용사서술어 역할에서, 생략된 주어 ‘바람은’과의 주술관계도 어색하다.[‘(바람은) 天然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의외로(?) ‘천연’에 ‘힘으로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상태’란 뜻이 있다. 그렇다면 이 ‘바람’은 인위의 개입이나 변질이 가능하지 않은, 아니 자체의 순전한 위력으로 거부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우주가 품부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늘 그렇게 제대로 살아있는 존재로 부각된다.          

 1연의 1행에 이어 2행도 ‘바람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로 운위되고, 같은 방식과 어조로 3, 4행이 이어져서, 우리는 이 시의 진술을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여기는데, 4행 직후에 별도로 화자의 말에 부응하는 다른 목소리[‘네’]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에 화자 이외에, 화자의 말을 경청하고 승복하는 상대 인물이 있으며, 화자의 말이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전제로 상대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2연의 9, 10행[‘ㅡ소문난 때깔로 온 바람은 마녀처럼 아주/가까이서 魂불로 속삭이고 있구나’]과, 3연 3행[‘ㅡ바람은 소문을 멀리 데려가기도 하지’]에서 또 이전과 구별되는 목소리에 직면한다. 우리는 좀 당황하며 이 목소리의 주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그 내용이 각각 직전 진술에 부가하면 좋을 참조 부연이라서, 화자 본인이라고 간주해도 무난할 것이다. 우리는 앞 부연에서, ‘늦가을’ ‘만산홍엽’에게 ‘바람’이 ‘데려가’려고 ‘魂불’처럼 ‘속삭’이는 말이 무엇인지 정작 궁금하다. 궁리 끝에 겨우 1연 6행에서 ‘바람’의 정체성인 ‘자유[무애]’를, 또 3연 2행에서 짐짓 부각된 ‘法水(법수)’[세속 중생의 더러운 때를 씻는 물과 같은 정화 불법]를 주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은 세상의 사물에게 생사여일(生死如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유하고 있는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3연 1, 2행, ‘바다와 하늘 잇는 용오름 회오리바람에/소리骨 솟구친 하늘물고기라도 法水세상’을 이 시가 제시한 세계의 기층을 진단할 수 있는 긴요 국면으로 주목할 수 있다. ‘소리骨 솟구친 하늘물고기’가 무슨 뜻인지 애매하지만 ‘회오리바람’에 힘입어 솔개처럼 하늘로 치솟는 바다의 ‘물고기’를 ‘어약연비(魚躍鳶飛)’ 이미지와 그 취지[‘만물이 저마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조화로운 모습’]로 추정할 수 있는데, 나아가 화자는 그 생명 향유 시공을 ‘法水세상’으로 귀결시켜 주목된다. 

 한편 이윽고 ‘바람’의 강력한 이미지들이 우리를 압도하면서 쇄신한다고 우리는 깨닫는다. ‘거센 폭풍과 해일’, ‘초강력 뇌우雷雨’ ‘마녀’ ‘魂불’. 또 ‘유리창의 성에꽃 속’ ‘탱탱’ 우는 ‘찬바람’. ‘더 세차게 울’면 [풀:꽃향기]~馫(흥)바람’. 특히 ‘불지옥天動소리’를 내는 ‘강철’ ‘용龍’을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세속의 탐진치(貪瞋癡)에 매인 차안(此岸)의 자신을 위해 오히려 합장할지 모른다.   

 이 시의 끝 행에 이르러서도 이제까지 겪은 난점을 상회하는 문제를 만나 행보를 멈추게 된다. 앞에서 일부 점검한 ‘바람’의 일은 화자의 묘사와 설명에 따라 ‘바람’ 자신의 의지에 따른 소위(所爲)로 알았는데, 그런 화자가 2연 4행에서 출현했던 목소리[‘네’]의 인물에게, ‘이 모든 일을 바람만은 모르고 있다네’라고 말하여서. 우리는 잠시 혼란스럽다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의 제목 ‘바람은 스스로 알고 있는 듯 행한다네’도 그러고 보니 ‘바람’이 사실은 모르고 행한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이 이 시의 주제라 할 모든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제행무상 초월 자유, 육근청정(六根淸淨) 무량공덕(無量功德)을 강조하는 아니러니 수사(修辭)의 찬사가 아니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