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풍요로워진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진정한 감동이나 기쁨을 느껴보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럴 때 가뭄에 만난 단비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가슴을 펴게 만드는, 아름다운 삽화같은 한 순간이 가슴에 꽂혀 오래 잊히지 않을 듯하다.
그것은 이 지역 한 시인의 시선집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일로 너무도 또렷이 가슴 속에 각인된 한 장면이다.
주인공인 시인은 이제 막 70대에 들어섰지만 체격에서나 체력에서 뿐만 아니라 사고력에서도 결코 뉘에게도 뒤지지 않을 탄탄함을 지닌 사람으로, 필자가 보기에는 평생을 성실하게 자신의 내면을 단단히 다지면서 확고한 신념과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몇 권의 시집을 낸 후, 올해에는 자신의 시 세계를 정리해본다는 의미에서였을까 신작시와 함께한 시선집을 출간하였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작품집을 내게 되면 소식도 전할 겸 출판기념회 자리를 마련하고, 즐거운 만남과 소통을 통해 축하와 격려를 나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시간이 다가오자 조촐하게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초대장도 만들지 않았건만 시인을 잘 아는 원근의 시인들과 지인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소박하나마 아늑하고 정겨운 자리가 채워지며 행사는 진행되었다.
주인공의 인사와 축사 등이 이어진 후, 첫 번째 시 낭송자로 등장한 하객은 서두에 이런 축하의 장소에 조금 덜 어울릴 것 같은 시를 들려드리게 되었다면서 그 동기를 짧게 말하였다.
그는 불행이란 불행은 모두 합친 듯한 정점에 서있는 콰지모도에게 자신을 투영해보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보기 힘들 것인데,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이 시인이 얼마나 강인한 의지로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며 여기까지 왔을까를 짐작하게 한다면서, 어쩌면 그런 고난들이 현재의 시인을 만들어준 밑거름이 되었을 것임을 우리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시낭독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마지막 차례로 주인공이 다시 등장을 하였다.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마이크 앞에선 주인공은 행사를 마무리 짓는 끝인사와 함께, 모시는 분들께 쓴 인사 말씀을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시집의 서두에 있는 머릿글로 시의 형식을 빌어 쓴 길지 않은 내용이었는데, 중간쯤 부분에서 어느 순간, 잠시 말이 끊겼다.
잠시 후, 다시 시작되던 ‘말씀’은 몇 번을 짧게 끊기고 또 끊겼다.
그제야 시인이 끓어오르는 오열을 참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 챈 객석에서 격려의 박수와 함께 함성이 터져나왔다.
시인도 하객들도 한마음으로 일치되는, 그것은 정말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치유와 위로가 함께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어렵게 겪어냈을 고비들을 회상하며 가슴이 벅차올라 저렇듯 회한과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가 있다니...
이 시인이 참으로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구나! 하는 감동까지 더해져 가슴이 촉촉해지며, 시선집을 낸 시인은 물론 참석한 모든 하객들에게까지도 감사와 감동을 진하게 느껴본 날이었다.
시인 프로필
1989년 시대문학 '수필' 2001년 예술세계 '시' 2017년 시조시학 '시조' 등단
시집/ '끝날때까지 끝난것이 아니다' 수필집/ '그 푸르던 밤안개' 등 다수
한국시학상 본상, 제물포문학 본상, 수원문학상 작품상, 경기문학인상 수상
한국경기 시인협회이사, 수원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