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05)] 이광호 '팥빵 한 봉지의 연가'
팥빵 한 봉지의 연가
이 광 호
주섬주섬
천 원짜리 팥빵 비닐 포장 벗기며
바스락거리는 마음으로
달달한 어느 때
한입 베어 물던
그 사랑을 떠올린다.
구긴 비닐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둥그런 빵은 부드러운 혀와 단단한 어금니 사이를 지나
작은 끼니가 되었다.
이빨 사이에 혀를 넣어 깨무는 종종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말들
뱃속에 거부룩하게 남아
포장을 뜯지 않은 밤이 길어진다.
지난달 28일 이광호 시인의 시선집 『저녁에 배달되는 아침』이 빛을 보았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시집 전편이 거의 다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생성과 소멸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깨달음이 짙게 깔려 있다. 그만큼 그 세계에 공감할 수 있어야 접근이 가능한 시들이고 한번 접근하면 또 그만큼 매료될 수 있다.
이광호 시인의 시는 한마디로 견고하다. 그렇다고 무슨 금속이나 바위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질감이 아니다. 오히려 마른 나무에 가깝다. 베어진 후 오래 묵어 제 몸의 물기마저 한 방울 남김없이 허공에 다 돌려주고 손때가 내려앉아 윤이 나는 나무에서 느끼는 단단함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중 상당히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촉감의 시가 있어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일상의 애환이 팥빵 한 봉지에 고대로 묻어있다.
미처 저녁을 걸러 늦은 밤 끼니를 그저 천 원짜리 팥빵으로 해결한다. 제법 달달하다. 그 미감은 한때의 옛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굳이 그 사랑이 아니더라도 가슴에 쓰라림으로 와 닿는 추억이 어찌 이 밤의 일뿐이랴. 수많은 어제의 시간에 미처 하지 못해 그대로 거부룩하게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는 말들이. 차마 자신에게도 말을 다시 건넬 수가 없어 ‘포장을 뜯지 않은 밤’과 같은 회한(悔恨)이.
굳이 말로 애써 풀려고 하지 말자. 사랑이 깊으면 가슴 속에 박힌 티눈도 한 톨 민들레 꽃씨처럼 고와지는 날이 있을 테니.
이 광 호 시인
수원시인협회 회원
화성연구회 이사
시집 『자전거를 타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버리지 않아도 떠나는 것들의 기억』
『저녁에 배달되는 아침』
공저 『유교 인문학 강좌』
현) ㈜ 모인터건축사사무소 전무이사
종묘제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