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 외면한 정치 포퓰리즘, 빈 껍데기 유치 그쳐선 안 돼
- 삼성전자 잔혹사의 교훈··· 팔 비틀기 전 인프라부터 갖춰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도로 건설 중인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비수도권 이전’ 군불이 정치권에서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지방선거가 막 끝난 지금,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여야 정치권은 호남과 영남의 당선인들까지 일제히 가세해 각 지역으로의 ‘반도체 할당’을 외치며 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정부 역시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나가겠다”며 묘한 여지를 남겼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첨단 기업이 지방으로 향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며, 온 국민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씁쓸함을 넘어 답답함이 밀려온다. 지방에 덜렁 기업의 생산 라인만 옮겨 놓는다고 지역 경제가 마법처럼 살아날 것이라는 단세포적인 발상 때문이다.
첨단 반도체 산업은 그야말로 ‘인재(人材) 전쟁’이다. 지방 이전한 제품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시장을 개척하려면 최고 수준의 우수 인재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다.
과거의 뼈아픈 교훈이 있다
과거 삼성전자가 분당 연구소에 있던 휴대폰 개발 인력들을 수원사업장으로 이전시킬 때 엄청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첨단 연구소를 멋지게 지어 놓았음에도 분당의 연구원들 눈에는 수원조차 ‘지방’으로 보였던 탓이다.
결국 회사는 전용 식당, 전용 주차장, 출퇴근 버스 노선 조정 등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하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야 간신히 우수 인력들을 수원으로 불러모을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로 생활가전 부문을 이전하려 했을 때는 어땠나. 당초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개발, 제조기술, 생산, 마케팅 등 전 기능의 이전을 검토했지만, 핵심 우수 인력들의 줄퇴사 사태를 우려해 결국 제조기술 일부와 생산 인력 중심으로만 내려보내야 했다.
그마저도 수년이 흐른 뒤 생산 제품의 원가 경쟁력이 저하되자, 상당수 라인이 동남아 등 해외 제조단지로 빠져나갔다. 우수 인재가 정주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억지 이전이 어떤 참담한 결말을 낳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실패 사례다.
바야흐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넘어 ‘부국강기업(富國强企業)’의 시대다. 첨단 제품의 경쟁 상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굴지의 기업들이다. 한국 우수 인재들의 두뇌와 기술력이 한데 모여야만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다.
중앙정부와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표심을 얻기 위해 기업을 옥죄어 지방으로 내몰 궁리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자녀라면 그 지방에 내려가서 만족스럽게 근무할 수 있을까?”를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고민해 보라.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면 첨단 기업의 지방 이전은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다.
첨단 기업이 이전하기 위한 인프라와 매력적인 정주 여건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우수 인재들이 제 발로 찾아가고 싶어 하는 환경을 만들지 않은 채 정치 논리만으로 이전을 강행한다면 기업들은 국내 지방이 아닌 해외로 짐을 쌀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책 입안자들은 과거 삼성전자의 뼈아픈 사례를 교훈 삼아 제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수 인재가 외면하는 빈 껍데기 공장 유치는 성공적인 균형 발전 전략이 될 수 없다.
기업의 팔을 비틀기 전에 인재를 품을 수 있는 지방의 그릇부터 키우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길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