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09)] 정의숙 '길'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정 의 숙

 

유월 장마 끝자락

간간이 부는 바람 타고

푸른 단풍잎 위로

또르르

빗방울 맺혀 떨어진다.

 

늘어진 가로수

그늘 아래

치켜올린 솔잎마다

걸터앉은 햇살

반짝이는 휴식

 

흐르는 시간

귀 기울이며

끝없이 이어지는

아득한 길 바라보며

잠시 쉼표 하나 찍는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더디다. 예년 같았으면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리시던 빗방울이 잦아들고 다시금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인데 올여름 장마는 변죽만 울리고 아직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위의 시는 정의숙 시인이 2018년 《한국시학》 가을호에 발표한 「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아마 그해 장마는 이미 6월에 다 끝났나 보다.

당연히 시간은 비가시적 영역이다. 시인은 이렇게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시간을 가시적 대상으로 환원하여 공간 안에 놓았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 공간인 ‘길’이라고 이름을 주었다. ‘유월 장마 끝자락/간간이 부는 바람’은 우리의 촉각 혹은 시각으로 인지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 감각의 총체는 결국 시간의 흐름에서 말미암은 변화이다. ‘푸른 단풍잎 위로/또르르/빗방울 맺혀 떨어’짐이 다름 아닌 시간이 낸 길이다. 그렇게 시간이 낸 길 위에서 ‘걸터앉은 햇살’이 휴식을 즐긴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아득한 길을 바라보며’ 혼신의 감각을 다 끌어내어 시인도 ‘잠시 쉼표 하나 찍는다’고 했다. 아름답고 즐거운 휴식이다. 

분명 장마는 반갑지 않다. 마뜩잖은 손님이지만 그래도 더디 오니 이게 무슨 심술을 부리려고 이리 뭉그적거리나 불안스럽기도 하다. 큰물 피해 없이 그저 메마른 대지를 충분히 적실 딱 그만큼의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 의 숙 시인

《한국시학》 신인상

한국경기시인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