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77)]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김승종 / 전 연성대 교수·시인

 

박경리(1926-2008) 선생의 시를 읽었다. 해설이 필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읽을 가치가 낮다거나 혹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건 물론 아니다. 소설가로서의 명성과 무관하게, 시 자체에 사려 깊은 애환의 진정성이 서려 있었다. 한편 선생의 소설들, 특히 우리 문학사의 최대 대하장편 『토지』 집필[26년]과 그 전후에 겪은 신산(辛酸)의 편린들을 헤아려 볼 수도 있어, 다음 시들도 선생의 자전(自傳)으로 여기며 서너 번 더 읽었는데, 그 여운으로 선생의 삶을 좀 반추할 수 있었다.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에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 「바느질」/박경리

 

 전체 맥락에 관련하여 자신의 글을 ‘글줄’이라고 겸사로 지칭하는 화자의 자의식이 범상하지 않다. 노년에 이르렀다고 해서 자신이 지난 생애에 쓴 글을 그렇게 낮추는 태도는 자칫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모면하기 어렵고, 심지어 자기과장의 단서로 삼아지는 빌미를 줄 수 있다. 그런데 1연 1행 ‘눈이 온전했던 시절[글 쓰던 시절]’의 ‘짜투리 시간’에 ‘바느질’에 몰두했고, 또 2연에서 보듯 ‘여행도’ ‘노는 것’도 ‘쇼핑도’ ‘재미없고’ 해서, ‘결국 시간에 따라 쌓이는 것은/글줄’이라는 탄식에,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아니 않더라도, 사람이 그럴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다며 동정 비슷한 존중을 하게 된다. 

 게다가 3연 1, 2행,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그것[글줄]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라는, 심상찮은 회억의 정조로 글쓰기를 ‘바느질’에 은유하는 대목에 이르러선, 더욱 공감 동조하게 된다. 4행,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에선 더욱 더. 그렇다. 이 토로에, 자신의 글은 자신이 생애에 걸쳐 입은 작고 큰 상처를 고통스러우나마 감내하고 객관화하면서 간접 직접 하나 하나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는 내포가 없다 할 수 없다. 인지상정에 기초하여. 어디 선생만 그러한가. 작가 시인과, 작가 시인의 작품과의 관계가.  

 참고로, 선생의 어머니는 소위 팔자가 사나워(?) ‘바느질’로 딸을 길렀고 선생도 젊은 시절 혼자되어 고향 통영에서 수예점을 연 적 있어서, 이 대목은 모녀상전으로 선생의 개인사에서도 뜻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평생에 걸친 글쓰기가 바느질처럼 자신의 운명이라고 문득 자각하면서,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자긍이 없지 않았겠지만, 내밀하게 팔자타령을 하기도 한 것이리라.   

 게다가 다음 시에서 우리는 선생에게 끼쳐진 세속 고초의 ‘흔적’에 관련된 사정을 알고 새삼  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옛날의 그 집」

 

 ‘이 세상 끝의 끝’에 있는 것 같은 ‘휭덩그레한 큰 집’에서 ‘십오 년’ ‘혼자’ 살았는데, 정작 우리의 주목을 끄는 국면은 5연의 ‘대문 밖에서는/늘/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이다. 우리는 이 짐승들을 문면 그대로 읽을 수 없다. 마땅히 환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실제로 ‘대문 밖’에서 으르렁거릴 수 없는 ‘하이에나’에서 아주 잘 알 수 있듯이. 그러고 보니 우리는 선생의 가족이 우로부터도 좌로부터도 지독한 훼예를 겪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는데, 선생은 자전에 해당하는 이 시에 그 정황을 기록해둔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의지와 무관하든 그렇지 않든 일방의 문제였다면 그래도 모르겠거니와, 이 작태는 우리 현대사의 진영 대립이 파생한 저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이기의 당파성 고수가 저지른 만행. 이데올로기는 저마다 정당성과 무오류를 기치로 내걸고 선동하고 있어 그 폐해와 후유증과 대비하면 만행이 아닐 수 없는데, 근간에도 최근에도 우리는 보고 있다. 선생이 이 세상과 작별한지 1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모순이 강고하게 지속되고 있는 현실, 차라리 선생과 선생의 가족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한편 우리는 그 세월을 선생이 어떻게 견뎌냈는지 이 시에서도 알 수 있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나를 지탱해 주었고/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이 말에 무슨 해설이 필요하랴만 『사기(史記)』의 ‘사마천(司馬遷 : B.C.145?~B.C.86?)을 의지하여 글쓰기에 헌신하면서 겨우 지탱하였다는 메시지에 괄목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은 단순한 노년 예찬만이 아니라 가까스로 견뎌온 지난 세월에 거리를 두고 회고하는 심정의 발출이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버리고 갈 것’은 그 세월에 이룬 저작을 겸손하게 의식하는 두터운 역설로 읽었으면 좋겠다.   

 사마천의 생애와 삶도, 후세의 시선도 다양한데, 선생은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 「사마천」   

 

 더 없는 치욕,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 ‘육체’와 ‘인생’을 ‘거세’당한 그가 늘 ‘멀미같이 시간을 앓’으며, 방대한 『사기(史記)』를 썼다고 했는데, 우리 역시 동의하면서, ‘멀미같이 시간을 앓’으며 대작 『토지』를 완성했다는 선생의 자기성찰 또한 투영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 근현대사의 ‘진실을 기록’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