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11)] 이종구 '꽃이 피고 지는 이유'
꽃이 피고 지는 이유
이 종 구
알 수 없는 이유로 피어나서
죄 없이 들꽃이 사그라져 간다
구부러지는 허리 부여잡고
연유를 모른 채 피고 지는 것이
어디 꽃들뿐이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에
환해진 봄날이 오고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옆에서 피어나니
이 얼마나 눈부시고 살가운 기운이었던가
나도 한 번쯤은 앞 개울 흐르는 시내를 희롱해보고 싶어지고
먼 산을 보며 떠나고도 싶어지는데
굳이 애써 피는 꽃들에게 피어나는 이유 묻지 말자
다만, 너른 들판
지는 꽃들에게 지는 연유 묻지 말고
손 흔들어 고웁게 작별을 하자
어제가 이종구 시인의 사십구재였다. 늦은 봄날 저녁 한낮에서 초여름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위로 저녁노을이 빗긴 날에 들녘을 떠나는 들꽃처럼 시인이 떠난 지도 어느새 달포가 지났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한 생애를 통과했고 그 지난한 삶 속에서도 한시도 시詩라는 구도의 염주를 놓지 않았던 그가 그렇게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떠나기 전 불과 나흘 전만 하더라도 한잔 술에 흥이 올라 배호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를 멋드러지게 불러제꼈던 그였다.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지난해에 《수원 詩人》 12집에 그가 발표했던 시를 다시 읽어보니 예기치 못한 이별을 암시라도 하는 듯하다.
시인이 걸어온 길은 거친 들판이었다. 시인은 그 들판에 ‘구부러지는 허리 부여잡고’ 핀 한 송이 들꽃이었다. 단 하루도 육신 곤고하지 않은 날이 없던 시인이었다.
그래도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날은 ‘이 얼마나 눈부시고 살가운 기운이었던가’라고 읊으며 ‘나도 한 번쯤은 앞 개울 흐르는 시내를 희롱해보고 싶어지고/먼 산을 보며 떠나고도 싶어지는데/굳이 애써 피는 꽃들에게 피어나는 이유 묻지 말자’고 한다.
이종구 시인을 처음 만난 때는 내가 삼십 초반 이종구 시인은 이십 중반의 한창 혈기 왕성하던 그러나 가난하고 이름 없던 문청 시절이었다. 그는 늘 조용하고 말수도 적었다. 그러나 몇 마디씩 툭툭 던지는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결코 녹록지 않은 날들을 지내 온 강단이 배어있었다.
그랬다. 그는 탄광의 광부로 혹은 밤길 만취한 사내들을 실어 나르는 대리운전과 택시기사로 혹은 밤늦게 낯선 집의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 배달 오토바이의 라이더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변두리에서 그 그늘을 숙명처럼 뒤집어쓰고 관통하듯 한 생애를 건넜다. 그래도 시인으로서 한 생애를 살아온 온유함을 잃지 않았다. 그 부드러움 속에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정의로운 정신은 형형하게 빛났다. 비록 후배지만 그는 존경할 만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그 시인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다만, 너른 들판/지는 꽃들에게 지는 연유 묻지 말고/손 흔들어 고웁게 작별을 하자’라니. 이 사람아. 아무리 고운 작별이라 할지라도 작별은 작별인 것을. 고와서 더 쓰리고 아픈 작별임을 자네가 모를 리 없건마는.
이 몹쓸 친구야. 나는 자네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영 허황한 거짓말 같네. 오늘 저녁이라도 남문이나 종로 뒷골목 자네가 드나들던 선술집에 가면 진환이 치상이 혹은 그 누구 또 누구 정겨운 얼굴들과 대작 담소를 하다가 ‘형 어서 오세요,’ 환히 웃으며 일어나 맞이해 줄 것만 같네. ‘같네’가 아니라, 꼭 그래야만 하네. 반드시 그렇게 우리의 저녁 시간을 만들어야 하네.
내 나감세. 생각해 보니 넉넉지 못한 주머니 핑계 대고 최근에는 자네에게 제대로 한 잔을 낸 적이 없구만. 때맞춰 비도 오겠다. 오늘은 비에 젖어 살더라도 내일도 여전히 젖은 인생이겠냐고 호기롭게 한 잔 드세나.
이 종 구 시인
월간 『문학공간』으로 등단
‘詩發’ 동인
프랑크푸르트 세계도서전 참여
시집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한다』
2026년 6월 2일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