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12)] 김도희 '매미와 배롱나무'
매미와 배롱나무
김 도 희
활활 타오르는 여름 한낮
배롱나무 그늘에
폭포수 같은 울음을 쏟아 내는 매미
냉기 섞인 습한 어둠 속
오랜 고단함을 씻어내기엔 너무 짧은 땅 위에 시간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울음뿐이다
존재와 숨과 열정을 불사르는 울음
매미의 속내를 알 듯하여
가슴 짠해진 배롱나무
가지 끝을 부르르 떤다
바람보다 길고 햇살보다 깊은
매미의 울음 멀어지고
배롱나무 가지 위에 바람만 남는다
오늘 수원의 한낮 최고 온도가 33도를 찍었다. 저 남쪽 내륙 어디인가는 40도에 육박한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더울 것인가. 책상머리에 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다.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여름 숲을 떠올림으로 피서를 대신해 볼 뿐이다.
울울창창 잘생긴 소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산집으로 오르는 돌계단에 그늘을 드리어준 여름 숲은 산 아래 무더위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비인간(別天地非人間)이다. 그래도 한여름 숲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이 매미가 운다. 그것도 아주 떼로 운다, 그 소리를 동무 삼아 어슬렁어슬렁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보이는 상왕산 개심사. 범종각 아래 배롱나무 그늘에 앉아 그 앞에 자리한 연못을 내려다본다. 산의 이름이 상왕산(象王山)이라 이 큰 연못을 코끼리의 물통 삼아 팠대나. 어쨌다나. 아무튼 거울처럼 맑은 물이다. 하여 다른 이름이 경지(鏡池), 거울 연못이란다. 물에 비친 산 그림자 위로 떨어진 배롱나무 꽃잎이 몇 점이 유난히 붉다. 그저 더우니까 달래보는 상상이다. 여전히 덥다.
위의 시는 김도희 시인이 지난해에 《수원 詩人 》에 발표한 「매미와 배롱나무」 전문이다. 시인이 앉아있는 배롱나무 그늘이 어디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시가 실마리가 되어 덕분에 상상으로나마 피서 삼아 잠시 개심사로 다녀왔을 뿐이다.
시인은 매미가 한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우는 까닭을 ‘존재와 숨과 열정을 불사르는 울음’이라 했다. ‘냉기 섞인 습한 어둠 속/오랜 고단함을 씻어내기엔 너무 짧은 땅 위에 시간/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울음뿐이’이기 때문에.
매미가 우는 배롱나무는 그 ‘매미의 속내를 알 듯하여/가슴 짠’해져 마치 같이 울어주듯 ‘가지 끝을 부르르 떤다’고 했다. 따로인 것처럼 보이고 그리 움직여도 대자연은 하나의 몸체이다. 이윽고 ‘바람보다 길고 햇살보다 깊은/매미의 울음매미의 울음소리도’ 잦아든다. 그리고 ‘배롱나무 가지 위에 바람만 남는다’고 했다. 여름 숲의 넉넉하고 깊은 적막이다.
지금이 배롱나무꽃이 한창일 때다. 붉은 꽃이 백일을 간다고 하여 목백일홍라고도 하는 저 나무에 꽃잎이 다 이울 때면 여름이 간다. 그렇게 세월은 그저 유수일 뿐이다.
김 도 희 시인
《스토리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