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논단] 교육, 지금이 위기라면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김만곤 (주)비상교육 자문위원

 

성 전환을 해서 집에서 쫓겨난 미혼의 젊은 여성이 TV 영상편지로 애절하게 간구하는 장면을 봤다. “아빠, 우리 밥 한번 먹어요.” 부녀는 진정성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밥 한번 먹는 게 때로는 그처럼 어렵고 소중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걸핏하면 “밥 한번 먹자”고 약속한다. 헤어지기 위한 수단 같은 그 인사가 부끄럽고 한심하다.

아파트 오름길에서 중학생 두 녀석이 마주치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가위바위보’를 한다. 한 녀석이 “안 내면…” 하자, 상대는 미소를 지으며 얼른 손을 내민다. 게임이 끝나자 이번에도 말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밥 한번 먹자”보다 창의적이고 신선해서 애들은 우리와 다르구나 싶었다.

학부모로부터 모진 말을 들은 교사도 많고, 학생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교사도 많다. 심지어 목숨을 버린 교사도 있었지만 어떤 사연이었는지 제대로 규명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지 않은데 세월은 흘렀다. 그간 국회에서 법을 고쳤다지만 선생님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다.

선생님들은 조용하다. 이제 됐다 싶어서는 아닐 것 같다. 더러는 어쨌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한다는 생각일 것이고, 참고 지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체념일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학교나 선생님들께 자녀의 인간교육을 기대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혹은 흐름의 사례를 들어서 난국이라고 할 수도 있고 교육적 위기라고 볼 수도 있다. 너무나 답답해서 가령 드라마에서처럼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지위나 재력,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비교육적인 행위를 하게 되면 속 시원히 처리해버리는 엄청난 능력의 직위를 하나 마련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다만 그건 유치한 공상에 지나지 않고, 혹 그렇겠다 싶어서 실행해 본다면 괜히 또 ‘자리’만 늘어난다. 담당자가 없어서 안 되는 건 아니고 어차피 사람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꼭 실행해 보고 싶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해보지 않은 방도가 있나? 국회에서 정한 법과 시행령 등이 있고, 거기에 교육청에서 특별히 정한 규정 같은 것도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 그걸 정했나? 보수적인 교육감일 수도 있고 진보적인 교육감일 수도 있다. 교육위원회도 있다. 마찬가지다. 그걸 새로 정하면 훨씬 좋아질까? 당연히 이번에도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일 것이고, 그걸 정하는 건 으레 학생들이 아니고, 직접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당사자들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문화적으로는 전 세기까지 ‘가장’ 후진적이었다가 금세기에는 ‘가장’ 선진적인 나라가 되었다. 그런 나라가 후진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되풀이할 수도 없고, 굳이 다른 나라의 사례를 모방해볼 필요도 없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호된 벌을 주는 방법 말고는 도리가 없다는 한심한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섭섭할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지금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 자체가 사실은 가장 핵심적인 교육내용일 수도 있고(그것을 지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만), 누가 이기고 누가 져야 마땅하고 속 시원한 싸움이 아닌 그냥 교육적 상황일 수도 있다.

교육행정가와 교육자들, 학부모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학생들이 전면에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게 최선일 수도 있다. 그들이 하고 싶은 건 그들이 정하고 그들이 지켜야 할 일도 그들이 정해서 스스로 통제하고 스스로 권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게 옳다.

그들은 장차 이 나라 이 사회의 인적자원이 되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꿈을 안고 오늘도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 스스로 행복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 하나하나는 ‘학교나 교육청, 교육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까’, 그것이 간절한 목표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도울 수 있을 뿐이고 그게 우리의 할 일이 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