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서울에서는 중학교가 난리가 났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급조한 국제중학교 설립문제로 온 나라 어머니들이 들고 나선 것이다. 영어 몰입교육 전진기지로서의 국제중학교냐 아니면 다른 공교육의 횡포냐를 놓고 교육계는 물론 전국의 학부모들이 떠들썩했다. 아직도 진행형인 가운데 이번엔 한자 교육에 대한 찬·반이 엇갈려 우리 교육계에서는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을 문득 깨닫고 나니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 온다. ‘우리 문화에서 한글을 빼면 무엇이 남을꼬?’ 생각하니 더욱 서글퍼진다. 요즘 학생들의 과외수업 실태를 보면 아직도 2% 모자라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여기다 한자까지 보태면 아이들이 너무 지쳐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애잔함까지 보태진다. 초·중학생은 오후 10시, 고등학생은 오후 11시로 학원 교습시간이 정해져 있다. 초기에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들이 긴장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어느 학원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논술학원으로, 영어 몰입교육으로 갈팡질팡하더니 이번엔 한자 교육까지 얹는다니 아이들의 수업시간은 어디다 맞춰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한글과 한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의 한자 실력이 너무 떨어져서 걱정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신문도 제대로 못 읽고, 한자로 부모님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어느 방송사의 골든벨 퀴즈에서도 한자만 나오면 10월의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그래서 걱정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걱정거리며 논의거리이다.
대통령은 지난 추석 무렵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누구나 사교육 안 받아도 특목고,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고액의 학원비를 잡으라고 특단의 지시도 내렸다. 이럴 때 적합한 4자성어가 ‘마이동풍(馬耳東風)’이요,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쇠귀에 경 읽기’에 해당된다. 상황이 이런 데 한자 교육을 제도권 공교육에 또 포함을 시키면 그 약삭빠른 사교육 시장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영어, 논술에 이어 이번엔 한문학원이 사방에서 뛰쳐나올 것이다. 한자의 기능이나 한문의 효용성에 대해서 나는 절대적인 지지의사를 갖고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던 한자문화이며 우리말 어휘의 70%가 한자로 돼 있으며 또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로 돼 있어 한자 없이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자 전문교육을 강화하고자 하는 문제는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면서 교육재정은 갈수록 줄고 각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의 내년 예산도 올해보다 더 줄어든다고 한다. 결국, 한자 교육도 사교육 시장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것이다. 강남의 부자 부모들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하지만,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언어에 무방비로 훼손되고 망가지는 한글을 놓고 맞춤법이건 문장이건 멋대로 뒤바뀌는 이 세태를 한자 교육을 강화한다 해서 고칠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우리의 한글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영어와 한자 그다음엔 또 어느 나라 글자를 끌어들일 것인지 정말 답답하다.
영국엔 셰익스피어가 있다. 그들은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 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아직도 세계 인문학, 철학의 대명사로 꼽힌다. 우리나라에는 세종대왕이 있다. 자랑스러운 한글이 있다는 말이다. 필요하면 또 필요한 만큼 한문 공부를 하게 마련이다. 영어 잘한다 해서 다 잘 살면 영어를 사용하는 일부 동남아 국가는 왜 그 모양이며, 일본은 또 왜 그렇게 잘사는 나라가 됐는지 한글날에 즈음해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