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수원華城’ 중심 문화관광도시로

정부수립 60주년·광복 63주년… 수원, 어떻게 달라졌나 세계화 1980∼2000년대

80년대 이후 수원의 최대 이슈는 월드컵 경기 개최와 월드컵구장 건설, 화성행궁 복원, 영통지구·권선지구·서수원지구·북수원지구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등을 들 수 있다. 또 올림픽 핸드볼 경기 개최, 수원천 정화사업, 수원버스터미널 이전, 연화장 이전 및 소각장 건설, 청소년문화센터 건립, 서부우회도로 및 경부선 횡단 과선교 개설 등 도로공사가 활발히 벌어졌다.

● 땅값 상승률 전국 최고

1980년대 수원은 토지구획정리와 주택건설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렸다. 1982년 수원지역 땅값은 15년 사이 350배 상승률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1983년에는 인구가 37만여 명으로 10년 전인 1973년 19만여 명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수원역을 이용한 사람은 모두 3천216만여 명에 달했다. 이는 1975년 이용객 수 112만여 명에 비해 엄청난 증가를 한 것이다.

1984년에는 수원의 등록차량이 1만 2천618대로 집계됐고, 수원지법과 수원지검이 신축청사를 준공했다. 1988년 올림픽과 때를 같이해 수원시청, 장안구청, 권선구청이 개청식을 했다. 1989년에는 수원시 야구장이 개장했다.

한편, 1982년에는 국민은행 수원지점에 현금자동인출기가 수원에서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 세계문화유산 지정

사적 제3호인 수원의 화성은 1997년 12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는 화성이 동서양의 발달된 과학적 특징이 통합된 18세기 동양성곽을 대표하는 군사건축물의 뛰어난 사례라고 평가하면서 등록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화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에는 곡절이 많았다. 1997년 4월1일부터 3일까지 세계유산위원회 협력기관인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의 니말 데 실바 교수가 화성 현지조사를 했는데, 그는 집행이사회에 화성의 보호와 보존에 미흡함이 있어 성곽의 보호에 관한 추가적 조치를 한 후 차기심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에 수원시는 1997년 6월23일부터 28일까지 집행이사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로 시장이 직접 날아가 이사국 대표들에게 화성의 보호유지와 보존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활동을 펼쳤다. 출국 전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와 외무부에서는 가봐야 헛수고라며 가지 말라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감동한 이사국들은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세계문화유산 목록 등재를 권고했고, 결국 그해 12월4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화성 주변 정비사업이 활기를 더해 서북각루와 서북포루 사이, 창룡문과 동북공심돈 사이 등 성곽의 끊어진 부분의 복원사업이 펼쳐졌으며,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의 성 밖, 창룡문 밖, 연무대 인근 등 성곽시설물과 인접한 민가들이 철거돼 공원으로 꾸며지고 있다. 또 관광객을 태운 화성열차가 성곽을 따라 운행돼 수원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 수원천 복원

1970년대 초반까지 수원천은 여인들이 빨래하고 아이들이 미역을 감는가 하면, 장마철이면 물고기를 잡는 청정하천이었다. 그러나 이후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생활폐수가 대량으로 하천으로 유입됨에 따라 수원천은 악취와 해충이 들끓는 죽음의 하천으로 변하고 말았다.

1996년은 수원천을 살리자는 움직임과 복개를 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해였다. 일부에서는 중심가의 교통체증 및 주차난을 없애고 악취가 나고 해충이 들끓는 수원천변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복개를 주장했다.

이에 맞서 수원문화원과 수원환경운동센터, 수원경실련 등 단체들은 복개가 오히려 도심 교통량 증가를 부추겨 만성적인 교통체증과 심각한 대기오염을 발생시킨다며 반대운동을 펼쳤다. 수원천 복개반대 운동이 한창 펼쳐지던 1996년에는 이미 복개 공사가 30%나 진행 중이었다. 약 6개월에 걸친 논쟁 결과 시민단체와 문화예술계의 주장을 시가 받아들여 복개공사는 중지되고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키로 했다.

우선 생활하수를 따로 분리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는 차집관거가 수원천변에 설치됐고 자연형 하천으로 변모시키는 공사가 시작됐다. 이로부터 1년 후 놀랍게도 수원천에는 물고기가 헤엄쳐다니기 시작했다. 물가에는 수초와 각종 꽃이 피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아이들이 물속에 뛰어들어 물장난하는 모습이 옛날의 시골 냇가를 연상케 했다. 수원천은 전국적인 명물로 부상했다.

● 월드컵 개최

2002년 6월 전 세계의 시선은 한국으로 집중됐다.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군중의 거대하고도 질서정연한 응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최대 이변인 한국팀의 4강 진출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수원에서는 월드컵 경기 중 미국-포르투갈(6월 5일), 세네갈-우루과이(6월 11일), 코스타리카-브라질(6월 13일), 16강전인 스페인-아일랜드전(6월 16일) 등 4게임이나 열렸다.

처음 수원시가 월드컵을 유치하겠다고 했을 때 조직위원회는 물론 수원시민들조차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수원은 결국 유치에 성공했고, 8년간 노력을 기울여 거의 완벽한 준비를 했다. 평가단은 수원의 월드컵 준비상황을 보면서 “가장 감동적이고 훌륭한 세계 최고의 월드컵”이라고 격찬했다. 시민 경기장 내 1인 1 의자 갖기 운동,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사업, 홈스테이-홈호스트사업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 華城을 랜드마크로

“앞으로 수원은 화성(華城)을 랜드마크로 하는 문화관광도시가 될 것입니다.” 수원학연구소 최자운 상임연구원은 수원의 미래상을 이같이 내다봤다.

“예전 선경SK나 한일합성 등의 기업체들이 수원을 기반으로 해서 도시 산업화를 이끌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러한 기업체들은 거의 사라졌어요. 따라서 수원이 나아갈 방향은 문화관광도시입니다. 앞으로 화성이 수원의 제일 중요한 문화자산이자 경제수입의 원천이 될 거예요.”

최 연구원은 앞으로 화성이 어떻게 보존되고 발전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수원인구 중 토박이보다 외지인들의 비율이 커지면서 이들의 애향심을 이끌어내는 방안도 고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수원의 경우 토박이는 거의 사라졌고 외지에서 유입돼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수원이 고향은 아니지만 이들이 문화적으로 수원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