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날이 그리웠다/얼마나 사무치는지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슬펐다/두고 온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허기가 졌다. (중략) 낙서를 했다/그 낙서가 시였을까?"
자신의 첫 번째 시집 '관계(비전출판사 값 7천 원)'를 들고 행복한 가을을 맞은 허효순 시인은 23일 인터뷰 자리에서 "시는 사람의 마음을 예쁘게 합니다. 시로써 삶의 기록을 묶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 같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허 작가는 "만약 제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도 인생의 발길을 헤매고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며 "글을 쓰는 이유가 남에게 보여주려는 건 아니지만 내 삶 일부분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첫발을 내 디뎠다"고 설명했다.
허 시인은 주경야독으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남편은 대학원에 근무하고 두 아들은 해외 유학을 하는 한마디로 '공부하는 집안'을 이끄는 '안방마님'이다.
시를 쓰면서 세월을 되뇌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허 시인에게 관계는 삶 일부이며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허 시인은 무거울 듯 무너질듯한 위기에서 따스한 눈길로 삶을 회고하고 눈물을 흐른 뒤 짓는 미소처럼 밝은 얼굴로 펜을 들으면서 시집의 페이지와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여유를 독자에게 안겨준다.
'상실의 계절'에서 그녀는 '피기 전부터 꽃이었지./빛나는 순간조차(중략)/비록 꺾여 버려진다 할지라도 나는 꽃이야.'라고 외치며 마지막 시인 '한 여자가 찾아왔다'에서는 '(중략) 숨죽은/기억의 벽/살아/숨 쉬는 벽/그 남자가 만든 벽/허물어지지 않는/벽…'이라고 자신의 고뇌를 내비치기도 한다.
시인이며 방통대 경기지역대학 이원규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날 받아든 원고, 그것도 자필로 써진 원고에 감명을 받았다"며 "때로는 관계없는 관계에서 관계를 찾을 수 있다. 두 분 모두 결코 짧지 않은 기간 고민하고 고뇌하면서 노력했던 흔적이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는 인연을 만들지 않았나?"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허효순 시인의 시를 빗대어 "허 시인의 작품은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가 떠올려지듯 긍정적인 인생관이 그대로 묻어난다"며 "'문득문득' 행복을 느끼며 현실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허 작가가 가진 시의 힘이다"고 밝혔다.
연작 형태의 이뤄진 '관계'에 대해 시인은 "특별히 연작으로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며 "써놓고 보니 특별히 제목을 붙일 수 없어 번호를 매겼을 뿐이다"며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인 자신도 "어려웠거나 즐거웠거나 자신의 삶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부분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친 것들 별것 아닌 것도 사물과 사물 간의 관계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시집은 언제 낼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언제라고 시기가 정해진 건 아니다. 좀 더 시선을 멀리 두고 싶다. 다음 시는 '한 여자가 찾아왔다'와 같은 소재로 잘 구성해서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서사적인 시를 쓰고 싶다"고 언급했다.
한편, 허 시인은 경기 오산 출생(1958년)으로 지난 2002년 문예사조에 등단했다.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 3학년에 재학 중이며 경기문창 '글타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