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험이란 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과 주고받는 그 무엇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은 최근 발간된 '팔달문학-2008 통권 15호'에서 '문학 창작에 있어 체험이 중요한가? 상상력이 중요한가?'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글을 쓰는 작가가 체험을 어떻게 글에 관통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지향점을 제시했다.
일반 문학잡지 같은 글이었으면 확연히 눈에 띌 문구가 아니었는데 열다섯 번째 발간된 팔달문학의 페이지를 넘기며 이 글귀는 유달리 애착이 갔다.
팔달문학은 경기도문학회(회장 이강석 경기도의회 공보담당관, 이하 기문회)가 발간하는 책이다.
이번 통권 15권에는 제8회 팔달문학상 당선작인 박광순(전 수원중부소방서장) 씨의 '조팝나무 꽃 외 2편'을 비롯해 86편의 시, 수필, 기행문 등 회원들의 애작이 실렸다.
도문학회는 지난 1991년 4월 19일 경기도 내 문학활동에 뜻을 두거나 취미활동으로 글을 쓰던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해 발족한 동호회다.
이들은 틈틈이 시간을 내 글을 쓰고 도민의 손과 발이 되는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생활, 직업 등 자신만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인생의 발자취와 향내를 글에 녹여낸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작품은 차분하고 삶의 향취를 다소곳이 드러내는 마음씀씀이가 보기 좋게 익은 고구마의 속살을 드러내듯 페이지 위를 장식,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강승도(고양 관광문화단지개발사업단장) 씨는 '찻잔'이란 시에서 "게으른 시간 속/차디 찬 하루/눅눅한 일상을 햇살에 말리고/뜨거운 찻물 우리니/곡우 한 스푼에 흔들리는 파문/말없이 시간 속에 들이 부어/고독한 설레임에/묻어나는 하얀여백의 삶"이라고 자신의 일상을 읊조렸다.
갑갑한 일상에서 곡우 한 스푼이 삶에 녹아들고 뜨거운 차 한잔이 목을 타고 흐르듯 공직생활의 단조로움은 스며들듯 인생을 관조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박일만(경기도의회 언론담당) 씨는 시 '고궁'에서 어스름한 시각에 마주한 중년의 삶에 대한 관조적이며 강렬한 독백을 내뱉기도 하다. 그는 "(중략)문명을 뚫고 가는 일 만만치 않은데/음각, 양각이 편년체로 낡아가는 돌담을 따라/선장도 선원도 사라진 배 한척 기우뚱/풍경소리에 가슴 저미는 나를 태우고/망망한 현대를 거느리고 가고있다/화엄이다"라고 외쳐버린다.
또 수필 '다산초당의 향기'를 낸 홍승표 씨는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망라한 디지로그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야말로 실용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다산선생의 향기 가득한 다산초당에서의 뜬금없는 생각…"이라는 심경을 남긴다.
과천시 부시장을 역임한 홍 씨의 글이 왠지 낯설지 않고 세상을 고민하며 선현과 얘기를 나누는듯한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정겹게 다가서는 듯하다.
수원시청 팔달구보건소에 근무하는 서형택 씨는 계절을 담아내는 '섬진강', '산수유', '봄날', '춘설', '청보리밭' 등 다섯 편의 시를 팔달문학에 실었다. 그는 시 '청보리밭'에서 "듬성듬성 한켠으로 채워진/연한 푸른 빛 청보리밭/내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넉넉함"이라며 글이 곧 삶이며 자연과 자신은 하나라고 독백한다.
본청에 근무하는 최창호 씨는 그의 등단 작품에서 첫 근무지에 대한 추억을 내비치며 이런 글귀를 남겼다. "지금도 선착장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전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고 여객선마저 도로가 놓인 뒤 중단돼 버렸다"고 대부도의 풍경을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매년 발간되는 이 잡지를 볼 때마다 어디서 이런 솜씨들을 숨기고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게 하곤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은 일반 공무원이면서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글쟁이 들이다.
기자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이들의 글을 많이 접했다. 다만, 이름이 없었을 뿐이다. 평상시 접하는 소속 공공기관의 홍보 메시지는 이들의 감성을 타고 전해질 때가 많았다. 이들은 언제나 글과 함께 도민과 호흡(?)해 왔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도문학회는 등단작가 20여 명을 포함해 도내 6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특히 매년 작품집을 발간하고 시화전, 시낭송회 등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어 삭막할 것 같은 공직사회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편, 이들은 지난 13일 회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원시 장안구 '찻집-시상'에서 조촐하게 제8회 팔달문학상 시상을 겸한 팔달문학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이강석 회장은 "앞으로도 도 공무원들의 정서함양과 풍요로운 근무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문학활동을 펼치고 회원 확충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