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한 음식점. 한 해를 돌아보는 이 자리에 돌연 '수원 화성'과 '우주 화성'이 화제로 떠오른다.
진솔한 삶의 공간인 '음식점'에서 역사, 철학, 천문학 등의 무거운 주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이 얘기를 듣는 주위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옮기는 '무례'를 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박해완 작가의 장편소설 '화성'(오늘의문화사)을 읽은 독자라면 그 테이블로 찾아들어 얘기의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씨줄과 날줄이 아름답게 엮어진 한편의 비단처럼 펼쳐낸 소설이 바로 ‘화성’이다.
처음 페이지를 접한 독자라면 '무겁지 않을까'란 두려움을 갖게 되지만 이는 기우일 뿐이다. 숨차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문체가 독자의 손을 놓지 못하게 심술을 부린다.
작가도 한편으로는 "역사가 돼버린 시대로의 복원적인 재현을 수없이 가상해 보았다"면서 "지금은 어쩔 수 없음에도, 그러나 가능과 불가능의 중첩적인 인식에 절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설 화성은 항상 외경스럽게만 바라보던 행성 화성, 역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간적 화성과 인물 정조를 21세기 소설 속 주인공이 살아가는 수원이라는 삶의 공간과 시공을 넘나들며 사색한다.
과거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절망, 인류가 나아가야 할 우주를 하나의 글 틀에서 풀어내는 작업은 분명히 고충이었을 것이다. 반면 이 과정은 그가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도 책장을 덮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작가는 "지금의 불가능 시대가 언젠가는 가능의 현실로 도래한다는 확신과 역사로 기록되지 않았어야 할 통한의 왕조사를 목도 할 수밖에 없었던 군주에 대한 내재의 관심과 위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남대 이규식 교수는 "화성이라는 미지의 행성과 정조와 수원화성이라는 역사의 실체를 다루는 작업 역시 시간과 공간과의 교감이라는 전제 아래 가능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8장 '상존의 정서'는 주인공 송명호와 정조 임금과의 교감, 공감대 형성하는 메커니즘은 단연 압권이었다"면서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촘촘하게 얽힌 그물망 사이에는 인간관계의 교감이 주인공들을 같은 정서 반경으로 이끌어 들인다"고 극찬했다.
작가는 2009년 새해에 이런 화두를 수원에 사는 우리에게 던져버렸다. 역사학자, 천문학자가 돼 수원 화성을 탐닉해보는 것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