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한 영화표나 공연표를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에게 "왜 표를 간직하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는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잖아요?"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선율과 감명깊은 공연은 사람의 마음을 비단결처럼 순수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은 순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슴 속에 추억을 만들기 위해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다.
경기도문화의전당(사장 박인건)은 올 한해를 '페스티벌의 해'로 정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냈다. 공연 편수는 모두 50여 편. 이중 도문화의전당은 'BEST 10'을 선정, 발표했다.
본지는 이중 다섯 편의 작품을 되돌아 본다. 내년에도 이 공연을 다시 한번 감상하고 싶은 마음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한해 공연 현장에서 모든 공연을 지켜본 도문화의전당 관계자의 짧은 관람평도 함께 싣는다.

"내 반쪽을 찾아라! 뮤지컬을 관람하고 달콤한 싱글파티까지 환호가 이어졌다. 뮤지컬 그리스는 역시 뮤지컬의 베스트셀러!"
1950년대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그리스는 젊은이들의 낭만과 사랑을 무대 위에 그대로 수놓았다.
대형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음악과 안무는 공연 내내 관람객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다.
매년 새로운 '뮤지컬 영웅'을 탄생시키는 그리스는 '윈터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앵콜 공연을 했다. 그리고 수원 무대에서 히어로 김형민과 헤로인 임혜경을 탄생시켰다.
이와 함께 공연 이벤트로 펼쳐진 '내 반쪽을 찾아라!' 행사는 뮤지컬 그리스만큼이나 인기가 높았다.
"나, 이렇게 너만을 바라보고 있어. 너에게 말하고 싶어. 나만의 진실을…." 샌디가 2막에서 부른 이 노래처럼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는 언제나 가슴 속의 열정을 대변해주는 무대일 것이다.
혹시 내년에도 다시 이 공연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경기도립극단 전무송 예술감독의 예술세계와 단원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2000년대를 헤매는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가슴 아프게 그려낸 연극이다. 원작자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7년 미국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이 작품의 부제는 '어떤 2막의 사적 회담과 진혼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펼쳐낸 수작이란 평을 듣는다.
퇴물이 돼가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이겨내면서 꿋꿋이 가정을 지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사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관람객들은 이 모든 감정을 내면으로 승화시키고 연기로 분출해낸 배우 전무송과 도립극단 단원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환갑이 넘은 나이, 중절모를 반쯤 뒤로 젖혀 쓴 고단한 모습의 노만수를 무대 위에 살려낸 전무송 예술감독은 이를 지켜본 많은 직장인과 그 부인들,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각인시켰다.
흐르는 세월 속에 늙어버린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관람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제1회 더 뮤지컬 어워드 최우수 작품상, 도문화의전당이 자체 제작한 창작 공연. 대한민국 뮤지컬의 새역사를 쓴 명품 창작 뮤지컬!"
지난 2006년 초연 당시 한국뮤지컬대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그중 연출·음악상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한 대작이다.
'꿈길', '꽃을 피우다' 등 주옥같은 노래들도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초여름의 공연 무대는 연일 관람객으로 꽉꽉 채워졌다. 왜 관람객들은 이 작품에 그 많은 환호를 보냈을까?
20대 초반에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왕권을 이어받은 개혁군주 정조는 태생부터 큰 슬픔을 안고 있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의 그림자를 항상 안고 살았다. 그리고 개혁을 꿈꾸는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 '장덕이'가 있었다. 그녀는 봉건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으로, 학문에 정진하고 문물수용에 진취적인 여성 실학자로, 정조의 정치적 고뇌를 함께하는 동시대인으로 나선다.
수원 시민의 가슴 속에 대왕 정조가 언제나 함께 하듯이 '화성에서 꿈꾸다'도 길이 남을 작품이다.

"거장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독일 음악의 정통을 이어온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라의 공연. 한마디로 감동!"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는 "음악은 종교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소련의 폭압정치로 인해 2년간 첼로를 만질 수 없었던 그의 연주경력을 본다면 그 열정을 쉽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관람객들은 천상의 소리에 매료되듯 이번 공연에 대해 평생 남을 추억이라는 찬사를 이어갔다.
이와 함께 격조 높고 진중한 연주로 마이스키와 환상의 무대를 선보인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수원 팬의 시각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 1870년대 창단한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거장 부르고스의 정통파 지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한마디로 말이 필요없는 연주회로 관람객은 박수갈채로 대신했다.

"경기도립국악단 김영동 예술감독이 고 박경리 선생 타계를 애도한 추모음악회. 음악극으로 토지의 대서사시를 우리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박경리의 토지는 완성도 높은 연주뿐만 아니라 고 박경리 선생의 타계를 기린다는 의미도 크다. 도립국악단이 토지에 담긴 뜻과 감동을 우리 음악으로 선사했다는 시도와 의미만으로도 선정될 수 있었다.
토지는 고 박경리 선생이 지난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94년 전 5부 16권을 완간할 정도로 대작이다.
이 작품은 지난 1995년 초연됐으며 김영동 예술감독이 토지의 내용을 노랫말로 압축한 대본에 곡을 붙여 만든 음악극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김영동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토지 음악만을 국악관현악과 솔리스트의 연주로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도립국악단의 내면을 울리는 선율은 공연 당시 감명을 전해줬을 뿐이지만 그 속에 담긴 토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추억은 영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