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에 집주인 위세 '역전'

수원지역 빈집 늘어나고 전세금은 지속 하락경기불황에 보증금 제때 못주는 집주인 많아

수원 권선구 권선동 중소형 아파트가 밀집된 102㎡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이 모(34·여) 씨. 지난해 10월 주변 시세보다 전셋돈이 비싸다며 낮춰 달라고 요청했지만, 집주인이 거절해 동탄신도시 새 아파트로 이사를 결심했다. 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오는 20일에 맞혀 이사할 계획이지만, 집주인이 전셋돈을 빼줄 여력이 없다며 재계약을 요구했다. 집주인은 현재 보증금보다 500만 원 낮춘 금액에, 낡은 싱크대도 교체해 준다고 했다.

인근 아파트 세입자 최 모(29·여)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미 계약 기간을 넘기고도 집주인이 연락을 끊어 버렸다. 애초 계약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여섯 달만 보증금 반환을 미뤄달라고 전했을 뿐. 최 씨는 신혼살림 장만을 위해 꼭 필요한 돈을 돌려받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다.

전셋돈 폭락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이 일대 집주인들이 최근 계약기간 만료에 오금을 저리고 있다. 수원 전 지역에 걸쳐 빈집이 남아돌고, 전셋돈이 떨어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상황이 역전됐다.

이 씨의 집주인 황 모 씨는 "수원에만 전세를 2채 놓았지만, 나머지 물건이 나가지 않아 당장 현금 6천만 원도 마련하기 어렵다"면서 "아예 집을 정리하려 싼값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극심한 경제불황 속 '역전세난' 탓에 집주인과 세입자의 상황이 역전됐다. 전세를 얻으면서도 권리를 꼼꼼히 따지며 큰소리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통상 2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전세도 1년으로 줄여 세 놓고 있다. 세입자들이 전셋돈이 더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장기계약을 꺼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 역전세난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 각종 부동산 세제 완화 대책과 경기부양 대책이 탄력을 받으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안구 B공인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역전세난'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 "집 없는 사람들은 요즘이 내 집 마련의 적기지만, 집주인들은 팔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광교신도시 분양 물량과 권선지구 등 9천여 세대의 아파트 공급계획이 잡혀 있는 데다, 인계동 재건축 단지 입주 등이 잇따라 역전세난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기존 급매물과 전세물건이 소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천천푸르지오와 SK 뷰 등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돼 전셋돈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 2일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이번 주 전셋돈이 지난주보다 0.53% 떨어졌다. 지난해 5월 신매탄 위브하늘채 입주를 전후로 전셋돈 하락이 시작돼 매주 '마이너스'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입지 및 주거환경이 좋다고 평가받는 영통동 삼성래미안 125㎡가 1억 5천만~1억 9천만 원 선으로 2천500만 원이나 하락했을 정도.

영통구 Y공인 대표는 "전셋돈이 떨어져도 경기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은행권 대출이 쉽지 않아 보증금을 제때 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많다"면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집주인에게 재계약 불가 및 대출이자 비용 부담 등을 내용증명으로 명시해야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