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길 터주는 선배 가수가 될 겁니다"

[인터뷰] 수원 출신 유명가수 송봉수 씨

▲ 지난 8일 (사)문화예술진흥회 송봉수 경기도지부장이 수원시 권선구 교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난 2000년도에 수상한 ‘경기도 문화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추상철 기자 gag1112@suwonilbo.kr
물은 아래로 흐른다. 인생은 종종 흐르는 물에 비유되기도 한다. 처음 샘을 떠난 물은 산을 넘고 강물이 되어 크게 성장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가 되어 대양을 이룬다. 사람의 꿈이 이런 것이 아닐는지.

가수 송봉수(50)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꿈을 이루려는 강한 열정과 의지에 놀란다.

보는 사람마다 그는 "향토 가수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며 "그 말은 가수의 활동무대를 지역에 한정 짓는 말이다. 차라리 저에게 경기도 출신, 수원 출신 가수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설득한다.

무대에서 열정을 토해내고 팬들의 가슴에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가수가 가진 생명력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가수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기도 하다.

수원시 권선구 교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그동안의 근황과 함께 가수 송봉수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무대  찾아 열창… 수원 출신 가수서 전국 유명가수로

가수 송봉수란 이름은 수원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다. 그리고 중앙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도 높아졌다.

20여년이 넘는 세월전 처음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단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정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 찾아다녀야했다.

송 가수는 "가수 초창기에는 양로원, 노인정 등을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했다"면서 "주부대학을 열고 노인대학에서 노래를 가르치면서 나의 무대를 넓혀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노래교실을 만들어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강사로 나섰고 그 제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그의 이름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위로 두 형님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무명 가수의 설움과 가족사의 비애가 그의 노래에 녹아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 노인정·양로원을 넘어 지역무대, 중앙무대로

그는 지난 2000년 인생에서 가장 기쁜 경사를 맞았다. 2000년 10월 3일 MBC가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향토가요제' 대상의 영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당시 송 가수는 '토야'를 불렀다. 이 노래는 제3회 경기도자비엔날레 주제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수원지역에서는 그래도 이름이 알려졌지만 제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때"라면서 "이후 라디오, 방송 등 가요무대와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의 텃세는 그를 무대에 부르기에 인색했다.

지난 2003년 당시 제3회 도자비엔날레 주제가를 부른 그는 모 중앙방송이 주최한 축하행사에 출연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3절인 노래의 1절 반밖에 부르지 못하는 설움을 겪었다.

그 이유는 인기가수들의 무대가 길어지면서 방송 시간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울분과 눈물을 머금고 열창했다. 경품 추첨 박스가 무대 위에 있는 상황에 부른 노래가 가슴에 그렇게 남는단다.

유명 가수인 그가 여전히 중앙무대에서 홀대받는 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지역 문화의 아이러니다. 그가 서지 못하면 후배 가수들도 무대에 서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각오를 다진다고 덧붙였다.

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유명 연예인에게 강력히 따진 적이 있다. "향토가수라고 부르지 말고 어느 출신 가수로 불러달라"고 말이다.

● 내가 노래를 부르는 곳이 무대다

송 가수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10년이 넘은 베테랑 진행자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전속 MC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지자체 행사 때마다 무대의 마이크는 그의 몫이다.

그러나 요즘 고민이 늘어나고 있다. 송 가수는 "후배들이 설 무대가 없다고 아우성을 부리고 화를 냅니다"며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후배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싶은 것이 저의 작은 바람이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무대를 찾아다닐 것을 권한다고 한다. 송 가수는 "내 경험이 아니더라도 가수는 노래가 숙명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노래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가수는 "후배들이 무대가 없다고 불평할 때 나는 사회봉사단체를 찾아 마이크를 켜고 노래하라고 충고한다"면서 "무대에 서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수 인생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밤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그는 이에 대해 "노래는 돈벌이가 아니라 팬을 만나는 것"이라며 "진정으로 내 노래를 사랑하고 따라 불러줄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나의 진정한 팬"이라고 말했다.

● 많은 수상 영예, 이제는 많은 후배를 위해 뛸 것

송 가수는 "수원지역은 시장님 등 많은 지역 어른들이 무대를 마련해주고 또 박수갈채를 보내주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무대가 많은 만큼 지역 가요의 힘이 축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가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상은 지난 2000년 수상한 '경기도문화상'이다.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경기도 효행대상, 경기도지사 표창, 수원시장상 등 여러 가지 수상경력이 그의 경력을 대변한다.

특히 경기도문화상은 경기도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이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송 가수의 가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수원지역을 넘어 경기도 내 지자체에서 활동하는 지역 출신 가수들에게 힘이 되고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그는 부인과 1남1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서 밝은 기운이 넘쳐난다. 10년 전쯤인가 송 가수의 딸이 무용을 전공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10년이 흘러 딸은 어느덧 어엿한 대학생이 됐단다.

송 가수는 "요즘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싶어한다"면서 "힘든 길이라도 자신이 하겠다면 힘껏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변함이 없는 송 가수의 노래 인생에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를지 궁금하다. 수원 출신 가수, 경기도 출신 가수들이 넘쳐나고 그들이 서는 무대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