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華城을 걸어보고 나서

이희정 수원시의회 의원

▲ 이희정 수원시의회 의원
팔달산 중턱에 멈춘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복원사업으로 끊어졌던 성곽이 연결돼 있었으며, 관광안내소와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돈돼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성벽 안을 걷다 보니 범종을 만나게 돼 3번 타종했다. 그 소리가 장엄하고 잔향(殘響)이 길어서 아직도 그 느낌이 여운으로 남아 있는듯하다.

이어서 당도한 서장대는 서노대와 함께 수원의 전경을 사방팔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명당자리다. 내려다보는 시원함도 있겠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면 나무숲이 마치 치맛자락처럼 밑을 가리고 있으며 2층 망루는 가슴과 얼굴을 보여주듯 감칠맛 나는 조망을 곳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잘 자란 소나무 수십 그루를 인위적으로 옮겨 심었다는 설명이었다.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숲은 기형적으로 훼손돼 있었다. 행궁 앞에서 서장대가 잘 보여 좋을지 모르나 위에서 내려다보니 소나무가 뽑혀나간 자리는 상처의 흔적이 너무도 커서 전문가의 손길이 시급한 현실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또 다른 방향의 소나무를 뽑아낼 계획이란 설명에 심히 걱정스러웠다. 마치 알몸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아 신비감도 없고 부자연스러워 차라리 살짝 가려져 있는 것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또한, 걱정스러운 일은 화서문과 장안문, 창룡문을 주간에 완전히 개방한 상태에서 보행자가 밟고 지나가게 돼 있는데, 통로 한가운데가 마루판으로 돼 있고 측면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협소해 기둥을 잡고 지나가야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완전 개방보다는 내려와서 우회한 다음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문화재관리가 될 듯싶다. 문화재는 바라보는 것이지 만져보고 밟아 보는 것이 과연 오래도록 보존하는 방법인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상주하는 관리인도 없는데 내부를 개방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곽 밖 등산객들의 산책과 트레킹을 위한 코스가 개선됐으면 좋겠다.

성곽의 구조는 경사면의 지형을 이용해 흙을 지정(地釘) 공사한 위에 석축을 쌓아 놓은 방식이다. 성벽 바로 밑을 밟고 걷는 등산로는 5m 이상 이격시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곽의 경관이 좋고 걷기가 편하다고 해도 보존차원에서 일정 거리를 이격시켜 걷도록 하는 것이 성곽 기단부의 지정을 훼손하지 않는 관리가 아닌가 여겨진다.

성안의 옛길을 따라 걸었는데 변화된 역사의 뒤안길을 느낄 수 있어서 색다른 체험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인식을 바로 해야 하는 만큼 그동안의 삶의 흔적을 인정할 줄도 알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열어갈 수도 있어야 한다. 인위적인 복원은 또 다른 역사와 문화를 죽이는 행위이다. 따라서 현실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역사적인 도시의 관리 측면에서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지침을 정해 거주민들이 스스로 정주성(定住性)을 갖고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것이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사는 삶의 흔적이다. 과거에는 보행중심의 우마차가 다녔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 교통량의 증가와 함께 이면도로의 골목길조차도 소방도로가 확보돼야만 하는 현실에 있다. 성안의 전체적인 도시 관리도 마찬가지로 모든 역사적인 흔적을 되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보전가치에 비해서 지나치게 슬럼화된 곳은 기반 시설의 개선과 부분적인 재개발 사업으로 자연발생적인 도시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성안에 민속촌을 만들어도 안 되고 대규모 현대화 사업도 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아파트 숲에서 벗어난 전통가옥과 근대문화의 절충식가옥이 저밀도로 분포하도록 해 성곽에서 바라보면 펼쳐진 가옥들의 형태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화성을 담고 있는 수원의 멋 그것은 바로 지금 볼 수 있는 수원이다.

/ 이희정 수원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