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정치 역사와 당면과제

매홀칼럼 = 이달순 교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과거 대립했던 정치세력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화해하고 화합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편 중도실용주의를 들고 나오던 이명박대통령은 화합과 통합을 위한 정치개혁을 주창했다. 이제 과거정치사에 등장했던 통합의 정치를 회고하면서 교훈을 얻어 새시대의 흐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이를 살피고저 한다.

첫 번째가 독립운동과 좌,우합작이다. 이상재, 안재홍등의 민족주의계와 허헌, 홍명희등의 사회주의계의 합작으로 1927년 2월15일 서울YMCA에서 “신간회”를 결성하였다. 지회가 140개 회원은 약 4만명에 이르러 일제시대 최대규모의 민족운동단체였다. 약3개월뒤인 5월27일에는 여성운동지도자들도 좌우합작을 시도하여 “근우회”를 조직하였다. 유영준, 황신덕, 최은희등이 주동이 되었다.

1929년 10월24일 미국 뉴욕의 증권시장이 무너지면서 세계대경제공황이 일어나자 공산주의자들의 신조인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한다고 판단하고 사회주의 계열에서 신간회와 근우회를 해소하게 된다. 두 번째는 해방정국과 납북협상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독립을 앞두고 좌파와 우파가 갈라서게 되자 46년 6월14일 김규식, 여운형, 원세훈, 허헌 등 중도세력이 좌우합작회담을 시작하고 미군의 하지중장이 6월30일 좌우합작 지지성명을 내게 된다. 10월 7일 좌우합작 7원칙이 발표되자 한민당과 조선공산당이 함께 합작비난을 하게 되고 이듬해인 47년 12월에는 좌우합작위원회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1948년 3월에 김구와 김규식이 북쪽의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제의하여 통일국가수립을 목적으로 남북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러시아군 진주때부터 조직적으로 북한 정부수립을 거의 완성하기에 이르렀음으로 남한의 이승만이 냉전의 시대를 예견하고 대한민국정부수립에 나섰던것이다.

UN이 통일정부수립을 떠맡으려 하였으나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이승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것이다. 세 번째가 박정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세력의 결성이다.

70년대이후 박정희장기집권체제에 도전하던 김영삼, 김대중의 야당진영이 연합하여 1984년 5월18일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조직하였다. 민추협이 중심이 된 신민당이 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원내 제1당이 되었으나 민추협은 원외에 남아 김영삼, 김대중의 활동기반을 공공히 하고 있었으나 민추협은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양김의 분열로 해체되었다. 위 모두의 실패요인은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가 현재의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는 과제다.

첫째가 이념적 갈등과 대립이다. 주로 경제적 문제가 중심이 되어있다. 둘째가 지역에 바탕을 둔 정파적 갈등과 대립이며 셋째가 친북 진보파와 반공 보수파의 통일논의 대결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통합의 정치를 회고하며 이 세가지 난제를 자세히 분석하고 합치될 수 있는 최소한 공통점을 점검하고 대화와 연구를 통해 모두가 이해한 다음 화해하고 타협하고 통합해야 한다.

통합의 원칙은 정치계보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찍이 T.제퍼슨은 최소한의 정부를 강조했고 19세기에 크게 유행하여 거의 신성시된 정치적 신조로써 미국문화에 뿌리내렸다. 그러나 20세기부터 제퍼슨의 견해는 점점시대와 동떨어진 인상을 주게 되었다. 정부의 역할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통합정치의 주체가 정부여야 하며 정치가 도와야 한다. 이제 정부는 시장경제도 복지정책도 모두를 떠맡아 해결하는 통합정치로 구체화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