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강의주제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요즈음 내가 그들을 위해 준비한 답 중의 하나는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법구경’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착한 일을 하며, 스스로 그 마음(뜻)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학생들 중에는 불교가 자신의 종교가 아닌 학생들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항상 덧붙이는 설명이 있다. 저 글귀에서 ‘부처님’ 대신에 ‘예수님’이나 ‘마호멧’을 비롯한 어느 성인을 넣어도 좋다는 말이다.
심지어 내가 존경하는 부모님이면 더욱 좋지 않겠냐고 하면 대부분 수긍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이 무엇이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착한 일만 하며 자기수행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이요 불국토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확실한가이다. 과연 한 걸음만 움직이면 선이 되고 또는 악이 되는 경계가 있는 것일까. 거짓말은 악이지만 선의의 거짓말까지 악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 기준은 모든 경우마다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보편적인 선과 악은 엄연히 존재한다.
요즈음 소위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하는 정부의 야심찬 정책으로 말들이 많다. 경제성과 환경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기에 이미 포기를 밝힌 ‘한반도 대운하’를 이름만 바꾼 것인가 하는 의심의 소리도 들린다.
과연 사업을 하는 것이 선(악)이고 반대하는 것은 악(선)일까. 정부의 사업진행이 너무도 졸속과 밀실행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은 이유는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서는 아닌지 궁금하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보편타당성을 설명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을 단순히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하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부족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 앞에 양쪽이 참여하는 허심탄회한 토론을 벌이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무척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안정이다. 서로가 믿고 보듬어 주는 이웃이 필요한 때이다. 나만이 선이고 내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남도 선일 수 있고 남의 것도 내 것만큼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왕이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보편타당한 선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