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매홀칼럼 = 김정섭(환경예술가)
요즘 우리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오늘날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레스)’ 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하라는 유럽 귀족사회의 뿌리 깊은 정신적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현대에 이르러 사회전반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그 의미를 계승하고 있다.

과거 우리에게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고 단지 문명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으려고 애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십년 지나지 않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문명의 편리함을 얻은 대신 잃게 된 과거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향수병에 걸린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요즘같이 공해로 인한 질병이나, 산업화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생존을 위한 치열한 도시의 정글에서의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도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고 삶의 터전을 일구며 자연과 함께 일생을 마무리하며 살아가던 예전의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적어도 과거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현재보다는 자연적인 면에서 볼 때는 훨씬 더 많이 ‘가진 자’였던 것이다. 이것을 달리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는 미래의 후손에 비하면 ‘가진 자’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아무 의미도 두고 있지 않는 숨쉬는 공기나, 마시는 물 그리고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들꽃마저도 가까운 미래엔 희귀하거나 찾아보기 어려운, 어쩌면 저 들풀마저도 그 자리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어릴적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며, 산열매를 따먹고 잠자리를 잡으며, 냇가에서 물을 떠마시던 그런 귀중한 자연의 혜택을 우리의 아이들은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난날 아무리 기상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미래의 기상 대한 경고메시지를 보냈었었지만, 반세기도 채 되지 않은 미래 - 현재 21세기 - 에 이렇듯 부정할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줄은 예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문명의 혜택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또 편리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하찮은 희생쯤이야 금방 과학의 힘으로 회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자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와서 우리는 이미 돌이킬수 없는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중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상실감과 그에 따른 위기감은 이제 너무나 중요한 인류의 사안이 되어 버린 탓에, 이제와서야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차원을 넘어서 외교적 차원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느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과거에 누리던 풍요로운 자연과 눈부신 햇살의 은혜를 내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적어도 현재의 상태라도 유지할 수 있기만 해도 우리의 아이들이 살기엔 부족함이 없을텐데… 하는 걱정도 앞서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미래의 후손들에 비해 아름다운 자연의 혜택을 받아 영광(?)을 누려왔던 ‘가진 자’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분명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또 인류의 미래에게 잠시 빌린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에게, 또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치가들은 정치가로서의 ‘양심적인 의무’를, 국민들은 국민들로서의 ‘헌신적인 의무’를 그리고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미래를 향한 ‘적극적인 의무’를 실행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단지 희생과 봉사만을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 우리가 후손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의무를, 과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통해 실천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