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부터 10월2일 까지 나혜석 거리 예술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해마다 그 거리에서는 미술대전, 음식문화축제, 민속예술제, 등 크고 작은 많은 행사들이 개최되고 수원지역 인근 대학생들은 물론 많은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여 다채로운 거리공연 및 미술작품 전시회 등을 개최한다. 하지만 참여하는 관계자나 시민들이 과연 나혜석 선생에 대해 얼마나 바로 알고 있는지, 행여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하다.
정월 나혜석(1896~1948)선생은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서 군수를 지낸 아버지 나기정(羅基貞)씨와 남양 서여제에서 면장을 지낸 최성대씨 딸인 엄마 최시의(崔是議) 사이에 2남 3녀중 둘째 딸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개방된 부모덕에 1910년 당시 삼일여학교를 1회로 졸업할 만큼 신식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어린시절 “아기”라는 이름에서 “명순” 그리고 “혜석”이라는 이름으로 바꿀 정도로 자신의 이름과 삶에 당당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최초의 개인 전시회, 최초의 소설 “경희”를 발표한 여성작가, 여성운동가, 진보적 사회 사상가 등 한국여성의 삶에서 최초의 것들로 점철되면서 선구적인 삶을 살아온 당대를 풍미했고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었던 “신여성”이었다.
그랬던 그가 1948년 12월 10일 서울 원효로의 시립 자제원에서 부도덕한 여자, 친일파 등으로 낙인이 찍혀 행려병사자로 발견 되었고 지금은 그의 무덤조차 없는 처참한 주검을 맞았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후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그는 1918년 3월 일본 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이듬해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5개월간의 옥중생활을 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그 후에도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루며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김우영 변호사와 1920년 결혼을 했고 다음해 남편이 일본 외무성 외교관이 되어 만주 안동현(현 중국 단동시) 부영사로 임명 되어 만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여성 야학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또한 외교관 부인 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독립 운동가들의 왕래 등의 편의를 보아주었고 의열단의 무기반입을 도와주는 등 민족주의자로서의 그의 행보도 역사학자들이 찾아냈다.
역사는 훗날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다. 자유와 해방, 자유 결혼, 사회주의, 낭만과 퇴폐, 친일파 등 극단적 평가를 했던 “나혜석”의 이름은 한동안 부정한 이름의 대명사 였었다.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서야 사학자들에 의해 그를 재조명 하게 되었고 나혜석 기념사업회(회장 유동준)를 설립해서 올해로 12주년이 되었고 그를 바로알기위한 심포지움은 계속해서 개최 되고 있다.
또한 2002년 2월에는 문화관광부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여권운동의 선구자로 이달의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고향인 수원시 에서도 10여 년 전에 그의 이름을 세긴 나혜석 동상을 세우고 그 거리를 나혜석 거리라 부르는데 그곳이 선생의 이름만큼 역사와 문화 거리가 아닌 것 같아 항상 아쉬움이 있다.
정부 관계자 및 수원시에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얼마 전 안중근 의사, 최재형 선생, 이상설 선생 등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했던 러시아 불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을 다녀 온 적이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당시 함께했던 독립 운동가들이나 고려인들을 위해 세워진 신한촌의 기념비는 초라하게 아파트 숲 사이에 쇠사슬 로 굳게 닫혀 있었고 최재형 선생 생가는 러시아인이 집을 짓고 살면서 얼씬도 못하게 하여 멀리서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고왔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을 편안하게 그리고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독립 운동가들의 생가복원이나 기념관 건립이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라 어렵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혜석 거리는 대한민국 우리 수원 땅인데 그 거리에 기념관을 세우는 일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유흥 음식점, 모텔 등 흥청망청한 그 거리에 서있는 동상에 몇 글자 적혀 있는 것만으로 어떻게 나혜석 선생을 바로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이라도 나혜석 거리에 기념관과 함께 토속음식점, 민속놀이 등을 체험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이 땅에 살고 있는 수원 시민은 물론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관람하기 위해 방문하는 국내 외 관광객들에게 수원이 낳은 자랑스러운 나혜석 선생의 업적도 홍보하고 관광도 즐기는 수원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념관 건립을 당부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혜석 선생은 봉건주의 사회에서도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인간적인 권리가 있음을 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면서까지 시대를 앞서 살아왔으며 그가 있었기에 현대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당당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기념관 건립만이 화가로, 문인으로, 여권운동가로, 독립운동가로 선구자적인 삶을 살아오신 그분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