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토박이!
필자의 고향은 수원이다. 팔달산(八達山) 밑 그러니까 지금의 선경도서관의 바로 북쪽에 위치한 동네, 어릴 적 그곳을 우리들은 ‘새말동네’라고 불렀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고 우리 스스로는 알고 있었고 주변의 시선도 그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이야 많이 발전하고 원래 그곳에 살던 주민들도 거의 떠나서 더 이상 ‘새말동내’라는 명칭은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신풍동(新豊洞)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외지에 나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디서 왔어요?”하고 묻을 때 “네 수원에서 왔습니다.”하면 “아~ 수원 깍쟁이, 발가벗고 30 리 뛴다는 수원에서 왔군요.”하면 마치 내가 깍쟁이라도 된 듯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원깍쟁이의 유래를 열심히 설명하여야 한다. “발가벗고 30 리를 뛴 것은 아버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맨발로 급히 뛰는 모습이 변질된 것”이라고 그리고 수원은 그렇게 부모님을 모시는 효심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그래서 수원을 ‘효원(孝園)의 도시’라고 부른다고.
언제부터인가 부동산이 재테크의 가장 훌륭한 수단이 되었다.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대부분 심리전에 강하다. 그 특징은 결단이 빠르고 일단 마음에 들면 ‘저지르고 본다.’라는 말처럼 주저 없이 주머니를 여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심리전이 통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수원에서 중개경험이 있는 필자의 눈에는 수원 토박이들의 재테크에 대한 심리전은 매우 보수적으로 보였다.
하긴 필자 자신도 부동산 재테크에 대해서는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 예로 동수원(東水原) 사거리 옛 교도소 자리에 월드메르디앙 아파트를 분양할 당시 3.3㎡(평)당 분양가가 평균 450만원 정도였다. 당시 정자지구나 영통에 비하여 비쌌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부터 약 8년 전의 일이다.
수원사람들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비싸다고 계약을 주저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몇몇 초등학교 동창에게 투자를 권유했지만 수원 특유의 깍쟁이? 성격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외지인 특히 서울, 분당, 평촌, 산본 쪽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쉽게 그 아파트의 분양권을 사고 또 파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이는 “수원 깍쟁이는 쉽게 못 살걸” 하며 “내가 수원에 살아봐서 알지”하며 수원사람을 폄하 하는듯한 말투도 있었다.
아파트의 분양권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다른 재테크 상품(상가, 오피스텔, 토지 등)도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뛸 때가 돼서야 수원의 토박이들은 “사야 할 때가 아닌가?”하고 문의를 해 왔다.
결국 처음 분양한 가격보다 훨씬 많은 프리미엄을 주고 재테크를 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때보다 2009년 지금의 가격을 비교하면 엄청나게 올랐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 있겠다. 깍쟁이에 맞는 재테크일까?
몇 년 전에는 수원의 부동산 시장에 재개발 열풍이 불었다. 대부분 땅값이 별로 비싸지 않던 곳이 재개발이 된다하니 많게는 서너 배씩 뛴 곳도 있다.
이때도 역시 수원사람보다는 외지인이 먼저 달려들어 싼 값에 사서 비싸게 팔고 떠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원사람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수원도 발전하여 이제 100만이 넘는 거대 도시가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발전할 것을 믿는다.
수원에서 낳고 수원에서 자라고 수원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수원 토박이로서 이제 수원토박이들도 깍쟁이 본연의 모습으로 재테크에 임하는 심리를 보수적인 투자보다는 공격적인 투자를 해보자고 한다면 나는 진정한 ‘수원 깍쟁이’일까? 하는 斷想(단상)에 젖어본다.
오늘도 수원천변의 물고기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원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동산 시장이 수원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