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실용주의의 만개를 바라며

매홀칼럼 = 이달순 (전 수원여대 총장, 계명고 교장)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은 “이명박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낸 경제에 관한 생각이 거의 같아서 총리직 권유를 수락했다”고 했다. 이명박대통령은 취임사에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식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고 했다. 그 뒤 MB는 “사회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되어야 한다”라는 지적과 함께 근원적 처방을 주창했다. 지난해 실물경제의 붕괴는 1930년대 대공황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때 자본주의 경제를 구제한것이 케인즈의 처방이었다. 케인즈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운찬이 케인즈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모 언론인은 정운찬을 케인즈주의자라고 했다. 케인즈의 이론을 쉽게 이해하는데는 W.에벤스탄의 견해가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A. 스미스의 국부론이 자본주의의 테제(正)이고 K.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자본주의 안티 테제(反)이며 JM 케인즈의 일반론이 새로운 경제의 신테제(合)”이라고 변증법적으로 밝혔다.

실상 케인즈는 “국가는 개인이 잘 수행해낸 일에는 참여해서는 안되고 국가는 공평한 대리기관이며 그리고 현대 민주사회의 정부는 적어도 일종의 봉사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가 IMF와 IBRD를 설립한것도 이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 벌어진 세계적 경제위기의 수습을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국가들이 시장경제를 고수하는 보수주의정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형태와 사회주의형태가 복합적이 되어 이념의 대립은 사라진 형태이다. 이는 마치 1929년 세계가 대공황으로 빠져들었을때 케인즈가 루즈벨트대통령을 도와 뉴딜정책을 채택한 재판을 보는것 같아 케인즈주의가 80년만에 되살아났다는 견해다.

 E.소티글리츠박사는 “이제는 우리 모두가 케인즈주의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회복지정책과 산업정책사이에서 규모면에서 다를뿐 이념의 근본적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MB는 실용주의정책을 가미한다는 것이다. 원래 현대 미국의 대표적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주의는 19세기말에 W.제임스에 의해 전세계에 퍼졌으며 20세기 전반에 와서 J.듀이에 의해 구체화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떠한 관념이라도 그것이 유용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관념은 진리라고 말한다.

이 주장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프래그마티즘은 유용한 것이야말로 모두 진리라는 즉 효용설로써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여기에 A.기드슨이 ”제3의 길“을 출간했다. 저자는 중도좌파의 입장에서 ”제3의 길“을 현대 사회민주주의 복원과 성공에 이르는 길로 규정하고 이를 단순한 좌우이념의 타협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라는 현실에 필요한 적극적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T.블래어 독일의 G.슈뢰더 등의 정치가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세계적 추세라 할 수 있다.

 50년만에 정권교체를 한 일본도 자민당은 정권과 관료의 유연한 관계유지를 통치의 기반으로 보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권이 자신들의 의지를 관료들에게 부과하는 것을 통치기술로 간주한다는 것 뿐이다. 독일의 총선거도 맥락을 같이한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과 뉴타안마이어의 사민당도 결투가 아닌 이중주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의견차가 크지 않다. 이제 세계는 이념의 시대를 넘었다. 우리만이 아직도 이념정파를 내세우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다. 더욱이 친북을 내세우는데는 어이없다. 대통령의 실천과 총리의 이론이 맞물려 증도실용주의 정책이 꽃을 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