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정조능행차시연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능행차시연은 수원시에 국한한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국왕능 40여기가 모두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전통문화와 교육을 함께 담은 유적지는 '융건릉'인 것이다. 융건릉에는 감명으로 가슴 뜨겁게 해주는 이야기 거리가 많다. 정조는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의 묘소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으로부터 1789년 화성으로 옮긴지 6년만인 1795년 윤2월9일 처음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유수부로 행차하였다.
정조는 행차를 1년전부터 준비하면서 수원으로 내려오는 길을 새로 만들었다. 노량진에서 시흥을 지나 군포와 의왕 등을 거쳐 지지대고개로 통하는 시흥길을 새로 만들었다. 노량진으로 향한 행차는 정약용이 설치한 배다리를 건너 노량행군에 도착하게 된다. 배다리를 놓기위해 '주교사'란 특별관청을 설치 배4백여척을 띄어 그위에 다리를 놓고 건넜다.
노량행궁의 중심건물이 요양봉저정에서 점심 수라를 드신다. 정조는 6천여 군사들을 거느리고 시흥행궁에서 1박한다. 다음날 안양 만안교를 지나 군포사근행궁에서 점심수라를 드신다. 수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 고개 이름이 지지대 고개다. 정조는 쉬는 동안에도 불쌍하게 돌아가신 아버님 한시 바쁘게 뵙고 싶은데 “지루하다 지루하다”고 해서 쓰인 이름인 것이다. 정조가 많은 소나무를 심은 노송지대를 지나 첫 번째 맞이한 과목정교 남쪽에는 370여년전 느티나무가 서있다.
만석거라는 큰 저수지에서 왕부위에 황금갑주를 걸치고 장안문을 지나 화성 행궁으로 들어섰다. 58Km를 내려온 능행차인 것이다. 13일에는 혜경궁홍씨 회갑잔치 그리고 곤궁한 백성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정조는 연무정에서 스스로 활을 쏘며 아버지가 일러준 18기무예로 군사들을 훈련시킨다. 현릉원(융릉)에 진배하고 아버님의 보호를 위해 지은 용주사에서 불공을 드린다. 그리고 8일만에 돌아온다.
그는 13차례 능행차를 했다. 몇해전 서울시와 경기도가 능행차 이벤트를 하려다 아마도 경비관계도 시행하지 못한것 같다. 그 이벤트보다 먼저 할 일은 정조능행차의 발자취와 숨결이 남아있는 지역 곳곳의 사적지를 발굴하고 복원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그 곁에는 기념관을 짓고 당시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하는 것이다. 이즈음 정부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운동으로 이곳저곳 자전거전용도로를 건설중이다. 차제에 정조효문화 자전거탐방코스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지역자치단체가 능행차 릴레이로 서울서부터 융건릉까지를 64Km의 능행차시현을 하는 것이다. 능행차가 통과한 지역마다 효고장인 것이다. 효고장마다 사적지가 복원되면 효행코스는 관광객이 몰려든다. 수원의 화성과 행궁 연무정은 잘 만들어져 있어 관광자리로 자리잡고 있다. 안타까운것은 융건릉이다. 호심이 유별난 정조는 아버님의 무덤밭 끝에 자기의 묘를 만들었다.
20년이 지난뒤 조정에서 감동적인 정조의 효심을 받들면서도 왕능으로써 격에 맞는 건능을 조성 이장했다. 그 자리가 초장지이고 왕릉터이다. 이곳이 정조효문화의 크라이막스다. 이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 단다 절대로 안될 일이다. 능행차 시연이 이곳에 도착해 아버님을 그리는 예를 올리는 것으로 막을 내려야 한다. 사라진 능터이지만 효문의 꽃이 활짝 핀 곳이다. 이곳에 한옥마을과 정조테마파크가 들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