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천년 전 인도의 자그마한 도시국가의 왕자로부터 시작된 불교가 오늘날은 인류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잊혀진 당시의 많은 철학과 사상 속에서 불교가 짧은 시간에 대중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지금까지 발전해 온 가장 큰 이유로 ‘인간중심의 만민평등 사상’을 꼽을 수 있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는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해 모든 사람을 네 가지 신분으로 구분하는 사성계급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지던 사회로 그 폐단은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계급사회는 사실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운명론적인 사회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미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사주팔자 등으로 표현되는 운명론이라 하겠는데, 이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일생은 이미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모든 것이 이미 그렇게 되도록 꾸며져 있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그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라고 하겠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이기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신분제도가 지켜지던 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셨다.
“인간은 결코 그의 신분에 의해서 비천해지거나 고귀해지지는 않는다.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신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행위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 즉 그가 어떤 행위를 택하는가에 따라 그의 운명이 변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라도 그의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귀족의 행위를 하면 귀족으로 노예와 같은 행위를 한다면 노예로 선행을 하면 선인으로 악행을 하면 악인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의 운명은 바로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귀한 자유의지에 관계없이 모든 것이 절대자의 뜻이나 운명 등에 의해 결정돼 버린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찾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3천년 전 부처님 말씀이 무색하게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업자득・인과응보의 법칙이 사라져 버린 부끄러운 세상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엄격한 법률적 해석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저 실수로 덮어질 수 있는 것인지 그저 신기하고 서글프다.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는 않더라도 미안하고 창피함을 알아야 할텐데 어찌된 일인지 그런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공무원의 수장이 되겠다고 버티고 임명장을 받게 되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다수의 잘못된 결정으로 대한민국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지연이나 학연 등에 휘둘리지 않는 올바르고 정상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