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서럽지 않게 잘 익어가길

수요칼럼 = 장병용 목사 (사단법인 에이블아트 이사장, 등불감리교회)

가을 여행을 몇몇 친구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시골 한 자그마한 마을에 살고 계시는 선배 목사님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교회 집회 인도 차 오셨을 때 내 친구가 연주했던 첼로 소리를 그리워하시다가 마음 공부하는 작은 모임에 우리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포근히 둘러싸인 산과 쪽빛 하늘에 붉은 물감을 찍어 놓은 듯한 고혹적인 감나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길다란 거실에 이십여명 정도가 빼곡히 들어앉았습니다. 피아노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가을 정취에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이 곡은 첼로 연주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 카잘스가 열세살 때인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악보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첼로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무반주 첼로 조곡'이었습니다. 처음 발견한 뒤 무려 40년간이나 연구를 거듭한 뒤에야 이 음악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장 단순한 것과 가장 복잡한 것이 함께 숨쉬고 있는 그 깊고도 오묘한 소리에 감탄을 하고, 끝 모를 심연까지 내 영혼을 끌고 내려가는 그 첼로의 신비한 음에 압도당하는 것을 느낍니다. 잎을 다 버린 나무의 흰 뼈들이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마구 움직이는 것과 같은, 아무런 군더더기가 없는 덧칠되지 않은 투명한 진실들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거침없이 토해져 나오는 감동으로 그 곡은 늘 내게 다가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첼로 연주자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연주자의 숨소리와 손가락이 이동할 때마다 들리는 미세한 마찰음까지도 생생하게 느끼며 듣는 음악은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마중물처럼 영혼의 깊은 샘물을 데리고 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연주는 끝이 났습니다. 허나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감동의 여운 때문에 할말을 잃어버리고 가을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선배 목사님께서 150년이나 되었다는 그 첼로의 몸통을 가리키며 이토록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첼로 몸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텅 빈 뼈만 남게 되면 위대한 영혼이 온몸을 관통해 놀라운 생명의 기적을 창조한다고 말한 어느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계속해서 선배 목사님 자신이 직접 해설한 금강경을 함께 읽는 가운데 눈길 머무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온 우주가 텅 비어 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 우리는 차 있는 것인가? 비어 있는 것인가? 둘 다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왔다.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텅 비어 있음이 바로 가득 차 있음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마음)을  '순수의식'(pure awareness)이라고 부른다."

있으면서도 없는, 보이면서도 안 보이는, 모든 것(everything)이며 아무것도 아닌(nothing), 텅 비어 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순수의식'의 상태가 신(神)의 자리임을 바로 거기서부터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시작될 수 있음을 아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텅 빈 첼로 소리'를 화두로 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다시 인생의 가을을 생각합니다. '텅 빈 뼈로',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가을이 서럽지 않게 잘 익어가게 해달라고 조용히 두 손 모으며 가을 시(詩) 한편을 가슴으로 읊어 봅니다.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어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의「가을이 서럽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