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 예술가>
그런데 지금은 시장이나 마트 진열대에는 먹거리들과 과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예전엔 지인들의 병문안을 갈 때에는 바나나를 사가면 굉장히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바나나 정도는 흔하고 싼 과일이다. 멀고먼 나라에서 직접 공수해온 열대 과일이며, 희귀한 농산물들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표를 달고 자극적인 향기를 뿜으며, 손님이 사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단 농산물 뿐이랴. 외국에서 들어오는 가공식품도 그 종류와 양이 엄청나다. 우리가 다 알 수가 없을 뿐이다. 얼마 전 어린아이들이 먹는 수입산 분유에 공업용 멜라민이 검출돼 한바탕 떠들썩하던 일이 있었다. 분유를 먹고 그냥 배탈이 나는 정도로 끝나는게 아니라, 영아가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뿐만 아니라, 과자와 한약재, 심지어 우리나라가 원조국인 김치까지도 중국시장이 우리나라를 침범하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먹거리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랴. 처음 농수산물 수입이 개방됐을 때에는 농업의 존폐에 대한 문제로 걱정이 절반, 경제가 어려운 서민들이 값싸게 농산물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농산물의 품질에 대한 걱정이 절반이었다. 결국은 우려하던 대로 저질 먹거리가 문제가 되었다. 끼니 걱정에 우리 주부들은 시장에 가기가 겁나게 되었다.
예전엔 그냥 시장에 가서 사고 싶은 물건을 흥정하기만하면 되던 것이, 이젠 장보러 가는 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모를 사더라도 원산지가 어디인지 또 유전자 조작농산물로 만든 가공품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정식 통관을 통해 들어온 농산물이 아닌, 보따리 장사를 통해 들어온 농산물들도 우리 식탁을 망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세관을 통과해 들어오는 농산물이 하루 몇 십 톤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먹을 음식에 대한 안전 제1선 방어막이 초장부터 무너진다. 유통기한을 속여 들어오는 식재료도 많다. 원산지를 속이는 정도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눈썰미 좋은 주부들은 농산물이나 수산물의 원산지 구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농민들조차 구별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얼마 전부터는 주말 농장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교외의 농장을 조금씩 빌려서, 주말마다 농사를 지어 가족이 먹을 농산물을 직접 재배한다. 신선한 시골의 공기를 쐬며, 일하는 것에 대한 보람도 얻고 건강까지 챙기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직접 재배한다는 매력이 도시인들을 시골로 끌어 당겼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귀농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볼 수 있다.
도시의 삶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무작정 농촌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젖어, 삶의 터전이었던 도시를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깨끗한 것을 마시고 먹고, 숨쉬기 위해 농촌을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필자는 산골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세월을 도시에서 자란 도시인이다.
가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어렸을 적 먹을 양식이 부족해 산에 올라가 버섯을 따먹고, 나물을 캐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이젠 그 시절이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는가를 밥상과 마주할 때마다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인류가 생겨난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이다. 시장마다 넘치는 물건들과 먹거리,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등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 그런데 결국은 무엇을 어떻게 잘 먹을수 있느냐는 걱정에 귀결된다.
오늘 저녁도 먹을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