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정조의 위대한 발자취가 있다

매홀칼럼 = 이달순

수원·화성·오산이 행정구역 통합대상지로 선정됐다. 화성·오산시의회가 통합에 대한 반대성명을 낸 만큼 주민투표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수원일보 11월 11일자). 그러나 주민투표에서 부결되더라도 언젠가는 한뿌리에서 출발한 이 도시는 통합도시로 탄생할 전망이다. 아마도 명품 통합시가 될 것이다. 통합도시의 명칭은 당연히 정조가 세운 수원화성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 여러 의견이 제시 될 수 있으나 수원 화성 오산은 정조의 수원화성에 그 뿌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정치계는 ‘세종시’ 건설을 놓고 혼란에 휩싸여 있다. 원안이 되었든 수정안이 되었든 세종시는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는 세종대왕과 인연이 없다. 상징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세종은 재위 32년간(1418~1450) 조선왕조 4대 임금으로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세종은 궁중에 집현전을 설치해 우수한 학자들을 불러 고전과 구시대를 연구하게 했다.

이 연구 성과를 토대로 국가의 정치체제를 정비하려고 한 것이다. 이 가운데 나타난 성과과 훈민정음 선포로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귀족적인 고려시대의 합의정치를 청산하고 문무양반관료에 의한 실제적인 행정체계를 갖춘 왕조의 정치조직을 집권화했다.

세종대왕이 조선왕조 전기의 위대한 군왕으로 손꼽힌다면 후기 조선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지도자는 정조대왕이다. 정조(1777~1800)는 18세기 조선왕조의 변혁기 개혁을 단행한 왕이다. 그는 학자군주이면서 문무를 겸비한 군주로 역대군주 중 유일하게 ‘홍재전서’란 문집을 남겼고 말 잘타고 활 잘쏘는 임금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문신에게 활쏘기를 익히게 해 규장각을 통해 문예부흥을 일으켰고 무신에게도 책을 가까이 하게 하며 장영용을 발전시키면서 무예부흥을 일으켰다. 그는 실학자와 가까이 하면서 실학의 붐을 일으켰고 개혁정치를 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선비들이 당쟁을 벌이며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되는 시점에서 탕평책을 써 정국을 안정시켰다.

일본의 반세기 집권당을 무너뜨리고 총리가 된 하토야마가 최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조다. 그를 연구하며 정치를 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무엇보다 정조는 자신이 효를 실천하고 온 국민에게 효를 가르친 군주가 됐다. 1795년 정조는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긴 지 6년 만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유수부로 행차를 시작했다. 그는 수원으로 내려오는 길을 새로 만들었다.


현재 화성에는 아버지의 융릉과 자신의 건릉이 있어 융건릉이 존재한다. 이곳에 한옥으로 이루어진 정조테마파크가 들어서야 한다. 한옥기념관, 한옥호텔, 한옥연수원 등 세계의 모든 관광객이 효의 예절을 배우고 익히고 가도록 해야 한다. 지구촌 유일의 효관광명승지가 될 것이다.


수원에는 행궁과 그가 쌓은 화성성곽이 잘 복원돼 있고 매년 능행차시연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오산의 독산성에서 아버지를 추모하며 밤을 샌 정조의 효심을 그리는 제야의 타종소리가 금년부터 울려퍼질 것이다. 수원·화성·오산은 모두 정조의 발자취와 함께 가슴 뭉클한 효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세도시가 하나의 통합시가 되면 그 명칭에 정조와 관련된 의미를 담아 줄 것을 제안한다.

수원 화성 오산은 현재 행정명칭과 구역이 다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수원이란 이름에 정조의 그 위대한 발자취를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정치적 또는 지역적 이해관계를 떠나 역사적 의미와 세도시가 한 뿌리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수원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