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스포츠인권에 대한 고찰

이대영 수원시의회 의원(경제환경위)

▲ 이대영 수원시의회 의원
얼마 전 수원 YMCA에서 청소년들의 스포츠 인권과 관련해 논의했다. 청소년들의 스포츠 인권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교체육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스포츠는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고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신체를 단련하는 것으로 효과는 신체에 한정되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와 리더십 강화, 사회성 증가 등 정신적인 효과까지 그 영향이 다양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운동의 효과 때문에 모든 세대의 전 국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미 자신의 건강을 위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것은 살면서 밥을 챙겨 먹는 것처럼 중요한 하루의 일과처럼 인식되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나고 버스를 타보면 나이 드신 어른들이 등산복을 입고 운동하러 가는 모습, 각종 스포츠 센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젊은이와 어른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운동의 긍정적인 효과를 잘 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필요성을 좀 더 어린 나이에 깨닫고 즐기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하교하면 나머지 시간은 각종 학원에 시간을 할애하는가 하면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 고등학생은 10시 이후에 하교를 한다. 전 국민이 웰빙을 외치며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앞으로 사회의 기둥이 될 새싹들은 이러한 웰빙과 건강의 사각지대에서 병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수원시의 통계자료로도 알 수 있는데 초등학교·중학교 체육시간은 주 3시간, 고등학교는 2시간이며 그것도 2~3학년이 되면 체육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일주일 중에 운동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우리 시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입시위주의 사회 제도에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직된 사고 역시 큰 이유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운동을 하는 행위에 대해 모든 사람이 누리는 기본적인 권리가 아닌 사회가 혹은 제도가 ‘운동을 하는 사람’ 과 ‘운동을 안 하는 사람’으로 나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는 뿌리 깊은 사고가 박혀 있어 운동으로부터 학생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는 60~70년대 국가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단기간에 많은 성과가 필요했던 엘리트 스포츠의 산물이며 구세대의 유물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운동을 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큰 임무를 지워줌으로써 정신적인 배움의 길은 포기하고 신체적 훈련만을 강요하게 되는 인권 침해를 야기시키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운동은 자기와는 다른 행위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유교의 경서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 중 ‘중용(中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균형과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덕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 교육의 목표는 전인교육을 통해 지덕체를 겸비하는 것이다. 과연 ‘지’ 만을 추구하는 현재의 교육은 옳은 것일까?
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교수이자 심리학과 겸임교수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 지능이론’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IQ, EQ 등 지능의 범위는 너무 작은 부분만을 포함한다는 것으로 이 이론에는 수학· 논리적 지능뿐 아니라 음악·예술·체육에 관한 것 역시도 지능의 한 부분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협소한 지능이론과는 다르게 뇌의 기능인 지능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을 포함한다는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지능과 지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지능의 범위가 넓혀지는 것은 그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는 지식의 범위도 넓어진다 할 수 있다.
작은 그릇에는 많은 음식이 담길 수 없다. 건강하지 않은 신체에 들어가는 지식은 한계가 있고 병이 들 수 있다.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는 우리 사회는 ‘지’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덕과 체’ 모두를 강조해 아이들의 그릇을 건강하고 크게 넓혀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아이들이 원대한 포부를 갖고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견고한 주춧돌을 형성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