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그리스도교 계통의 선교문구인 것 같았다. 불교에서도 기도와 염불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정말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기도와 염불이면 예외 없이 해결 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기도와 염불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 효험의 신빙성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과연 신도들에게 무조건 기도하고 염불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가르침일까 하는 고민이었다.
기도와 염불이 불교수행이나 신앙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30여년 불교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경전을 접해 봤지만 의외로 부처님께서 믿음과 신앙을 강조하신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불교의 수많은 계율 어디에도 믿음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후대에 성립된 대승경전에서는 타력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지극한 염불’ 등을 강조하지만, 적어도 아함경 등의 초기경전에서는 무조건적인 신앙보다 오히려 번뇌를 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실천수행을 더욱 강조했음을 엿볼 수 있다.
자력적인 요소가 강했던 불교가 후대로 오면서 타력적인 모습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사회가 발전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 사람들에게 보다 손쉽게 불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염불(念佛)’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도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옛말처럼 단지 결과에만 집착해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시험 때가 돼서야 열심히 기도하고 염불한다고 해서 아들딸이 시험성적이 좋아진다면 누가 2등을 하고 누가 꼴등을 하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기도와 염불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될 몇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무릇 종교란 이타(利他)와 자비(혹은 사랑)의 정신이 우선시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나 ‘내 형제’ 혹은 ‘내 식구’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개인의 기복으로 그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따라서 단지 기복만을 위한 기도와 염불은 지양하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와 염불이 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무조건적인 맹신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무리 정성들여 기도하고 염불할지라도 설악산의 흔들바위를 공중에 뜨도록 할 수는 없듯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우승할 수 있다는 식이라면 그것은 터무니없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도와 염불은 단순한 기복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방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하면서 들키지 않거나 노름하면서 많은 돈을 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염불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도둑놈 심보’다. 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남을 아프고 힘들게 한다면 그것 역시 ‘도둑놈 심보’다.
그런 올바르지 않은 바람을 들어 줄 부처님이나 절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바람은 ‘모두를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자식만 성적 좋기를 바라기 보다는 모두가 만족할 성적이기를 바라고, 나만 돈 많이 벌어 잘살기를 바라기 보다는 경제가 호황이 돼 모두가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기도요 염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