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저문다. 세모라고 한다. 2009년은 세모(歲暮)가 아닌 시모(時暮)라고 하는것이 좋겠다. 한 시대가 저문다는 뜻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트로이체는 “역사연구의 모든 노력은 시대구분에 귀착된다”고 했다. 역사는 발전의 과학이다. 발전은 직선적인 것도 동질적인 것도 아니다.
역사발전에 구분점이 나타난다. 구분점이 시기다. 시기는 새로운 발전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시초이다. 시기에 의해 전진하는 한 단계가 시대다. 역사는 시대의 과학이라고도 한다. 우리 시대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그 이전 시대의 특징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발전할 시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시대의 성격이나 특징은 목표가치를 말한다. 목표가치에는 문화·경제·정치적인 모든 가치가 포함된다.
시대구분에 밀레니엄(천년), 센츄리(백년), 디케이트(10년)가 해당되지 않는 것은 질적인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시대에는 고대·중세·근세로 3분화 됐으나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으로 5분화 돼 마르크스를 반박한 로스토우교수도 5단계설로 맹공했다.
시대가 진전하면서 구분점에 세대라는 것이 등장했다. 세대차라는 것이다. 세대는 혈통의 대를 말한다. 아마도 30년간의 세대가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어 부자 간에 생각이 달라 대화도 잘 안 되게 된 것이다. 시대변천이 가속화되고 발전양상이 다양화되면서 시대구분은 항상 수정가능한 잠정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이제 2009년을 세모보다 시모로 구분짓고자 하는 의도도 이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1998년부터 시작된 김대중 대통령과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10년 집권기간을 한시대로 성격짓고 2009년을 새로운 발전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시초로 보고 2010년부터 새로운 시대가 전개된다는 뜻에서 시모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두시대의 질의 차이를 목표가치로 비교해 보자. 첫째가 자유와 평등의 이념문제다. 우리는 건국 이래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면서 공업화성장을 도왔으나 다른 한편으로 산업화과정이 민주주의 유일한 기초를 위협하는 새로운 불평등문제를 제기했다. 이른바 김·노 정부의 집권은 불평등계층의 한풀이를 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진다. 이 한풀이 투쟁의 종막이 드리워지는 것이다. 둘째는 대북정책이다.
그동안의 반공정책이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서게 하는 데 공헌한 바 크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공산당으로 몰아붙인 데 대한 한풀이로 기득권세력을 누르고 평화적 정권을 수립한 집권세력은 평화통일이란 가치 아래 대북 화해정책을 펼친 것은 잘한 일이라 평가되지만 지나친 친북주의로 북한에 퍼붓기만하고 끌려다니는 꼴이 됐다. 이 또한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정책의 일대전환이 왔다.
셋째는 노조문제다. 대기업을 성장시켜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노조는 억압돼 있었다. 노조에 사기를 북돋아 준 것이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라 하겠다. 노동귀족이요 산업발전과 시민생활에 불안을 안겨주는 노조천국이 됐다. 이제 노조를 정상화시키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섯째가 노무현 정부는 평등을 바탕으로한 정책을 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미화시켰다. 교육의 평준화정책은 훌륭한 인재양성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인위적 교육의 평등정책이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 시대의 좌파정책이 저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