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머무는 절에서는 일반 신도들을 대상으로 매년 경전을 한 가지씩 정해 공부하고 있는데, 올해 공부하고 있는 경전은 ‘금강경’이다. 경전이란 희한하게도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지기에 아무리 읽어도 새로운 느낌이 든다.
엊그제 본 구절 중에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면, 그 사람은 전생의 지은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이번 생의 사람들의 업신여김으로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니라’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불교에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해 업(業-행하는 모든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과거가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현재의 행동을 보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것들은 부처님을 비롯한 어떤 절대자나 사주팔자 등의 운명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짓고 받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위의 구절은 어떤 사람이 과거의 업장이 너무도 두터워 금생에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그 업보를 다 갚지 못해 지옥·아귀·축생 이라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비방한다면 그의 업장이 더 빨리 소멸된다는 말이다.
공자님께서도 “과분한 칭찬을 받는 것은 군자(君子)가 갈 바가 아니고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것이 군자가 갈 바이다”라고 해 과분한 칭찬보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훨씬 낫다고 했다. 다시 말해 공연히 남으로부터 칭송을 받아 업장을 다 소멸하지 못하고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보다 불행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억울하게 비방이나 업신여김을 받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오해로 가슴 아픈 일을 당하는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거나 상대방을 욕한다면 그것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듯이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는 데 힘을 주는 것이 종교의 힘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나에게 닥친 곤란한 현실을 ‘나에게 주신 시험’이라고 생각하듯이 ‘나의 업장을 소멸해 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의외로 보다 의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종교의 힘이다.
그런데 업장의 소멸과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참회’다. 나에게 닥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밖에서가 아니라 나에게서 찾아 진실 된 참회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후회보다 그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억울하다면 억울한대로 나의 잘못이라면 나의 잘못인대로 받아들이고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애벌레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듯이 존재 자체의 엄청난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미 순간적인 존재의 변화로 모든 의식이 열리고 사고(思考)가 확장돼 조금 전의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이왕이면 어차피 닥친 아프고 괴로운 현실에서 도망가지 말고 당당하게 부딪혀 오히려 한 걸음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살만하지 않겠는가.
근래 없었던 추위와 폭설로 시작된 새해, 앞으로 혹시라도 그 어떤 어려움과 만나더라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슬기로운 한해가 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