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3월 미국 미조리주의 휼톤시에 있는 웨드미니스터여자대학에서 2차 대전의 영국 전 수상이었던 W.처질(Winston Churchill)이 특강을 통해 “세계대전이 끝나고 온 인류가 평화를 구가하고 있는 이 때 러시아는 발틱해의 스테틴에서 아드리해의 트리에스트에 이르기까지 대륙을 횡단해 ‘철의 장막’을 드리워 쳤다. 이 선의 뒤는 모스크바의 지배에 속한다.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민은 결속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명한 철의 장막 연설이다.
이듬해 미국의 트르만 대통령은 즉시 반공정책을 펼쳤고 러시아의 모로토프 외상은 콤민프롬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은 1949년 12개국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설치했고 이에 대항해 러시아는 5개국으로 코메콘을 설치했다. 또한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이 이에 가담해 ‘죽의 장막’을 설치했다. 세계는 양극화됐고 UN의 원자력위원장 바르크는 ‘냉전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고, W.리프만(Walter lippmann)이 시사주간지에 냉전을 칼럼으로 썼다. 60년 전의 국제정세다. 그 뒤, 1956년 후르시초프가 평화공존 연설을 하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위인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 얼었던 국제질서가 해빙의 시대로 긴장이 완화된 것이다.
1966년 불란서 드골 대통령은 나토를 탈퇴하고 나토사령부는 파리에서 벨지움 카스티유로 이전했다. 그러나 러시아 붕괴이후 동구전국가들이 자주보호를 위해 나토에 가입해 현재는 공산주의 출신 나토가입국이 12개국으로 늘었다. 프랑스도 43년만에 나토에 복귀하고 알바니아와 크로아티가 새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나토의 시름이 깊어지게 된다. 2001년 미국 9ㆍ11테러를 겪었을 때 아프카니스탄전에 뛰어든 나토는 개전 8년이 넘는 지금도 전쟁이 계속 되는데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나토군은 아프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했지만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다.
지지난해(2008년) 대선에서 완승을 거둔 오바마측 수뇌부는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대외정책의 출전을 아프카니스탄에 맞췄다. 아프카니스탄에는 미국 6만8000여명과 40여개국 4만여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탈레반의 저항이 완강해지면서 미군을 비롯한 파병국가들의 인명손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 2007년 여름 20여명의 선교봉사단 집단 피랍사태 직후 의료 공병부대를 철군시켰고 그 뒤론 파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08년 6월 파리 ‘아프칸 원조공여국 회의’에서 작년부터 2011년까지 73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회의에서 각국이 밝힌 지원규모는 영국 12억달러, 독일 6억4000만달러, 일본 5억5000만달러였다. 아프칸전쟁이 발발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1억3000여만 달러를 지원해서 세계지원액의 0.2%를 차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지난 60년간 북한 도발을 제 1선에서 막는 방파제 역할을 맡아왔다.
한ㆍ미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아프칸 지원규모가 인색하다는 소리를 들을만 하다. 한미동맹과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서 국제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기여를 늘릴 필요가 있다. 다행이 우리 정부가 지난해 아프카니스탄 지방재건팀(PRT) 보호를 위한 병력 파견안을 확정하고 파병기간을 금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2년반으로 결정한 것은 환영할만한 것이라 하겠다. 정부는 아프카니스탄 타스완 지역에 320명 내외의 국군을 도합 500여명의 요원을 파병한다고 발표했다. 이 또한 인색하다는 국제적 여론을 감수할 처지에 있다.
금년 상반기 국회와 시민단체에 의해서 반대에 부딪힐 것도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는 나토군과 함께 손잡고 아프카니스탄 탈레반만행을 방어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일에 깊이 참여해 인류의 찬사를 받았으면 한다.
매홀칼럼= 이달순(전 수원대총장, 계명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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