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개별적인 특성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도 모르는 새 내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몸담고 있는 수원은 어떤 곳일까? 흔히들 수원을 일컬어 효(孝)의 도시라 한다.
그것은 아마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의 설립 연유와 지금의 수원이 탄생되는 배경에 정조의 효성이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정조 대왕의 효심을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있다. 혜경궁 홍씨는 비운의 여자다. 아버지와 시아버지 영조의 정치적 결탁에 의해 세자비에 간택됐지만, 부근인 사도세자와 노선이 달랐던 시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홍봉한 사이에서 한 많은 세월을 견뎌냈다. 한중록이라는 궁중문학도 그런 인고의 산물일 것이다. 이런 어머니의 입장을 헤아려 정조는 정성 어린 회갑 잔치를 수원부에서 베풀고, 이에 대한 기록을 낱낱이 남겼기에 우리는 지금 이백여 년 전 궁중의 의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성문을 경비하는 부대와 성의 외곽을 경비하는 부대 간에 교대의식인 장용영수위의식이나 정조대왕능행차 등 그 어느곳보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도시가 바로 수원이다.
때문에 수원시민들의 자긍심이 남다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전통은 보존과 아울러 그 정신을 바탕으로 현재에 맞는 형식으로 재창조될 때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효의 본거지로 다른 지방도시보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어르신들을 접해 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금의 여러 가지 노인 문제의 근간에 소외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됐다. 전통적 가치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가벼이 여겨지고 노인들이 가진 많은 경험과 지혜 역시 새로운 지식 앞에서 무용지물 취급을 당한다. 세대 간의 단절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다.
이런 단절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세대의 노력이 이뤄져야만 하고 또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일례로 거의 모든 동마다 있는 경로당의 경우 현재 주로 소일거리 없는 어르신들이 말씀을 나누거나 화투내기를 하는 곳이 돼가는 형편이다.
현재의 모습으로는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찾는 어르신들에게도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고여 있는 물처럼 변해가는 이런 공간을 잘 활용해서 배움의 공간, 서로 거듭나는 공간으로 삼았으면 한다.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어르신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드리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몇몇 어르신들도 지금의 생각을 바꿔 배움이 곧 젊어지는 비결임을 알게 된다면 그 배움을 통해 작게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서로 주고받을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이고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규모가 큰 다양한 행사 역시 과거의 재현에 그치고 시민들은 구경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르신들이 돼야 한다.
이처럼 어르신들이 남아있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만들어져 200년 전의 젊은 수원처럼, 효와 실학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다시금 젊은 수원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