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설득으로 소통하는 사회

매홀칼럼 = 수산스님(대승원 주지, 불교사상연구회 이사장)

유난했던 추위와 오랜만의 폭설이 온 대지를 뒤덮었던 겨울이었건만, 어김없이 세월의 흐름 앞에 자리를 내어 주고 얼마 전 지난 ‘입춘’이라는 절기를 계기로 이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입춘을 맞아 새로운 한 해를 맞는 기도를 한다.

이날은 초파일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많은 신도님들이 참석해 기도를 올리는데, 간혹 입춘과 불교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사실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된 불교에서 원래부터 입춘이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칠석’과 ‘동지’도 마찬가지다.

삼천여년의 역사를 갖는 불교의 특징 중의 하나가 지금까지 한 번도 믿음 때문에 피를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오면서 이곳에서 갖고 있었던 민속신앙 등의 믿음을 절대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큰 사찰 입구에 있는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이란 존재도 부처님 당시 인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던 신들이었다는 점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절대자로서의 신을 부정하는 무신교인 불교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은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신이라기보다는 불제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 부처님의 제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기에 불교가 동양권으로 오면서 이곳에 있어 왔던 신앙과 만나 함께 공존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지’나, 수명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는 ‘칠월칠석’, 만물의 시작인 봄을 맞는 ‘입춘’을 맞아 가족과 이웃의 좋은 일과 경사로움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인도 성지순례에서 보았던 수많은 파괴된 유적지들은 이기주의와 배타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70m가 넘는 불탑의 모든 불상을 파괴하고 그것도 모자라 흙으로 메웠던 현장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몇 해전 세계를 경악시킨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정부의 바미얀 대석불 파괴야말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가 세계문화유산의 파괴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중세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무수한 사람을 살해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이슬람교 사원과 그리스도교 사원이 공존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잘못된 믿음이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준다.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기 위해 서구인들이 벌인 끔직한 만행과 나치스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그리고 발칸반도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인종청소 등의 사건들은 아마도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악의 잔혹한 범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의 근본 원인을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이해심이다. 내가, 나의 것이 중요한 딱 그만큼, 남도 남의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해심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바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란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인데도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짓누르려고만 하니 화합과 소통이 요원하기만 해 보인다. 상대방이 나의 철학과 나의 믿음과 설령 다를지라도 그들의 철학과 그들의 믿음에도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자.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타와 척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설득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기억하자.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반대하는 4대강 사업에 있어서는 침묵하면서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는 국민투표를 운운하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야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모든 것을 자기가 편한대로만 이해하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더 우리나라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할지 걱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믿고 싶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반쪽의 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생산국이 됐고 교역량에 있어서도 세계의 상위권에 드는 나라로 발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수한 국민성을 이제는 이해와 포용을 발휘해 서로 소통하는데 집중할 때다. 머리를 맞대면 대화로 풀지 못할 문제가 없다. 기득권과 욕심으로 가득 찬 집착을 버린 곳,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모두 함께 딛고 서야 할 자리이다. 유난했던 추위와 폭설을 이겨냈듯이 2010년은 다툼과 아픔이 사라지고 평화와 웃음이 시작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