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합중(和合衆)’이다

매홀칼럼 = 수산스님(대승원 주지 불교사상연구회 이사장)

불교에서 ‘스님’을 가리키는 ‘중(衆)’이란 용어가 있다. 그런데 이 ‘중’이란 말은 예전에 ‘계집’이란 용어가 일반적 호칭이었음에도 요즈음은 욕지거리와 같은 비하의 의미로 바뀌어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뜻으로 불리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매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존칭접미어로서의 ‘~님’이 아닌 한 단어로서의 ‘스님’이란 용어가 어감도 좋으니 이왕이면 ‘스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당부하곤 한다.

그런데 ‘중’이란 용어는 원래 ‘화합중(和合衆)’이란 뜻으로, 이는 인도말 ‘상가(Samgha)’를 번역한 ‘승가(僧伽)’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단체생활을 하던 출가수행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합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출가수행자들의 교단(敎團)을 의미하는 ‘승가’에는 육체·언어·마음·계율·견해·이익 6가지 화합의 의미가 있다고 해 ‘화합중(화합의 무리)’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화합’이 단지 출가수행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말 하지 않아도 모든 집단, 모든 구성원들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필수조건이 바로 ‘화합’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결국 우리 모두가 바로 화합의 무리 즉, 화합중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작게는 한 가정에서 크게는 지역사회 나아가서는 한 국가에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화합’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주위는 이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어리석음과 고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지난 3월 26일 속보로 접한 천안함의 침몰소식은 온 국민을 안타까움에 젖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고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뒤 오늘까지 보여 준 정부와 군의 대응모습은 너무도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특수상황의 대한민국에서 군인의 존재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다녀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요 며칠간의 군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부모들에게 마음 놓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도 된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모든 자식을 마음 놓고 군대에 보낼 수 있어야 사회적 갈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고에 이어 들려오는 후속조치에 대한 소식들은 전문지식이 없는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는 엉성함의 극치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실종자 수색이 최우선이 돼야 했음에도 실종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서진 선미의 행방을 3일 후에서야 겨우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침몰위치도 몰라서였을까, 한시가 급한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허비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또한 침몰 함정을 예인할 크레인선의 도착도 아직 며칠이 더 걸린다는 소식에 왜 그리도 대응이 늦어지고 있는 것인지 답답한데, 실종자 가족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우리 군과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이 이 정도로 낙제점일 줄은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조금 전 구조요원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더 이상 희생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자가 받는 가장 큰 형벌은 자기보다 열등한 자에게 지배받는 것이다”라고 했다. 과거의 정치는 소수의 귀족 혹은 사회 엘리트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러나 정치는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 경제가 너무도 어려우니 걱정 없이 먹고 살게 해달라고 뽑아 준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지금까지 짐짓 정치에 무관심해 온 나는 플라톤의 말대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렇게 온 국민의 안타까운 관심이 집중된 엄청난 사건임에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의 표계산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나만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공자는 “정치(政)란 바라야(正)한다.”고 했다. 바른 정치야말로 우리 모두가 이뤄내야 하는 작업으로, 각 구성원의 평등 속에서 소수이고 힘없다고 침해받지 않는 덕치(德治)여야 한다.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바른 정치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화합의 정신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소위 사회지도층 분들의 떳떳하고 철저한 국민을 위한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그저 공허한 바람이 아니기를 바란다.

작년에 나에게 수업 듣던 학생이 해군입대를 원하는데 집에서 지난 서해교전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나로서는 아쉽게도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말 대신 단지 집안에 걱정을 드리지 않는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소극적인 조언을 해주었는데, 군대 간다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계속 그 학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입대해 자대배치를 받았을 텐데 어디에 근무하고 있는지 알아 봐야겠다.

지금 이 시간까지 닷새가 넘도록 어둡고 차가운 물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실종자들의 기적 같은 생환 뉴스속보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